난형난제다. 한 뿌리에서 나서 각각 다른 열매를 맺은 스웨덴 영화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5일 개봉)과 할리우드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12일 개봉)은 비교 우위를 논하기 힘들다. 전세계 독자들을 열광케 한 스웨덴의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의 강한 기운이 스크린에도 전해진 것일까. 에 영상과 소리를 입힌 두 영화의 만듦새는 각기 다르게 빼어나다. 일주일 간격으로 국내 극장가를 찾는 두 영화는 시리즈 마니아들에겐 일종의 축복이다.
은 북구 복지국가 스웨덴 사회의 어둠을 그린 스릴러 소설이다. 유명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정체불명의 여자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금융재벌의 비리를 보도했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블롬크비스트가 명망 높은 방예르가(家)의 의문의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는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블롬크비스트와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하고 몸에 거대한 용 문신을 한 살란데르의 직선형 사건 해결 방식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두 사람이 맞닥뜨리는 의혹은 40년 묵은 것이다. 방예르가의 아름다운 16세 소녀 하리예트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면서 두 사람은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과 마주한다. 그 살인사건은 스웨덴의 음습한 역사를 상징하고, 사회 병리로서 현재까지 존재하는 파시즘을 대변한다. 매력적인 인물들의 인연과 사회의 음지를 들춰내는 이야기 전개가 이 소설의 백미다.
영화의 스웨덴판은 블롬크비스트(미카엘 니키비스트)와 살란데르(노미 라파스), 두 인물을 간결하게 소개하면서 실종 사건 속으로 바로 진입한다. 하리예트는 누가 죽였는지, 나치에 부역한 방예르가의 불명예와 하리예트 사건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파고들며 물음표를 만들고, 느낌표를 찾아내간다. 진실 규명 앞에서 위기에 처한 블롬크비스트, 그를 구하는 살란데르의 활약이 서늘한 서스펜스를 안긴다.
스웨덴판이 사건 중심이라면 할리우드는 인물들을 좀 더 파고든다. 재판에서 진 뒤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그)가 카페를 찾아 블랙커피와 말보로 담배를 주문하는 장면은 그의 직선적이고 명쾌한 성격을 비춘다. 살란데르에 대한 묘사도 좀 더 상세하다. 과거의 이력 때문에 정상적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살란데르가 쓰러진 법적 후견인을 병문안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블롬크비스트의 오랜 연인이자 동료이고 잡지 밀레니엄의 편집장인 에리카(로빈 라이트)의 등장 빈도가 많은 점도 특징이다.
스웨덴판의 현지 개봉 제목이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Man Som Hatar Kvinnor)이고, 할리우드 판의 원제가 '용 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인 점은 사건과 인물에 각기 초점을 맞춘 두 영화의 특성을 반영한다.
할리우드판은 물량에서 비롯된 영상의 풍성함을 무기로 내세운다. 영상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데이빗 핀처 감독('파이트 클럽' '소셜 네트워크')이 빚어내는 색조의 조화가 깊이 있게 다가온다. 이미 '세븐'과 '조디악' 등의 전작들로 스릴러에도 재주가 있음을 보여준 핀처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잘 발휘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마흔 세 살에 여자 관계가 복잡한 블롬크비스트의 남성적 매력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배가 불룩 나온, 스웨덴판 블롬크비스트는 거의 단벌 중년으로 등장하는데 크레이그는 화보 촬영을 하듯 종종 멋진 옷차림을 자랑한다.
스웨덴판은 원조의 물씬한 향기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빽빽한 침엽수림과 눈발,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찬 듯한 스톡홀름의 삭막한 풍경 등은 스웨덴의 정취를 머금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정서까지 반영하는 풍광이 영화의 냉기를 강화한다. 호감 가기 어려운 무뚝뚝한 표정의 블롬크비스트는 우직한 행동들과 맞물리며 오히려 신뢰를 안겨준다. 반면 사과에 화살을 꽂은 듯한 문자와 군나르손이란 이국적 이름만이 공간적 배경을 인식시키는 할리우드판에선 원작의 문제의식이 휘발된다.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크레이그의 연기도 북구 분위기를 퇴색시킨다.
두 영화는 소설 속 이야기 장치들을 영화의 호흡에 맞춰 의도적으로 서로 다르게 부각시키거나 생략한다. 블롬크비스트와 방예르가의 오랜 인연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이다. 스웨덴판은 소설에서처럼 블롬크비스트가 어렸을 적 하리예트와 교감을 나눈 적이 있음을 명시하지만, 할리우드판에선 나오지 않는다. 두 영화를 합치면 원작의 내용이 그대로 복원된다 해도 무방하다. 잔혹한 장면들이 직설적으로 표현홱募?점은 공통점. 두 영화 모두 청소년관람불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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