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침대와 찢어진 가죽 소파는 베트남의 응웬 번 륵 부부의 빈한한 살림살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부부의 야윈 얼굴엔 벅찬 기쁨이 묻어난다. 남편 얼굴을 감싸고 뽀뽀하는 아내와 살며시 아내 다리에 손을 얹은 남편의 표정에선 보는 이마저 뭉클하게 하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진다. 응웬 번 륵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가 쓴 주삿바늘 사용으로 에이즈에 감염됐다. 꾸준한 치료로 건강을 회복해가던 그는 끝내 합병증으로 숨졌지만,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속에선 희망을 잃지 않은 밝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 매그넘 소속 작가 8명이 9개국에서 이 같은 희망과 기적의 현장을 포착했다. 스티브 맥커리를 비롯해 알렉스 마졸리, 파올로 펠레그린, 짐 골드버그, 래리 타웰, 요나스 벤딕센, 일라이 리드, 질 페레스 등 매그넘 사진작가들은 인도, 베트남, 페루, 스와질랜드, 러시아 등에서 만난 30여명 환자의 치료 후 극적인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지난달 23일 개막한 '매그넘 세계순회사진전-생명의 기적'이 생생한 기록의 여정을 보여준다. 550여점의 사진과 9개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출품됐다.
30년간 전세계에서 에이즈로 숨진 사람은 3,000만명.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일어난 내전 사망자보다 많은 수치다. 전세계에서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스와질랜드에서는 성인 4명 중 한 명이 에이즈로 사망해 길바닥에 나앉는 아이들도 많다. ARV(항 레트로 바이러스)약제 치료로 생존 가능성이 80%까지 높아졌지만 치료비가 비싸 극빈국의 대다수 에이즈 환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을 돕기 위해 2002년 글로벌펀드가 설립됐는데, 이번 순회 전시는 이 펀드의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다. 2008년 6월 미국에서 세계 순회전시가 시작된 이래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7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3월 4일까지, 성인 1만원, 중고생 8,000원 (02)2277-2438.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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