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사상 최대의 금융마비 사태를 빚은 농협 전산망이 연초부터 또 다시 장애를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2, 3일 전산 장애가 일어난 지 불과 한달 만에 또 다시 비슷한 사고를 빚으면서 기강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3일 오후 7시24분부터 52분까지 28분간 농협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해 NH체크카드 고객들이 결제 등 대부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농협 관계자는 "새로운 카드거래 프로그램을 실행하다가 전체 공통프로그램을 건드리면서 장애가 발생했다"며 "체크카드 서비스 중 BC카드 승인만 빼고 모두 한동안 기능이 멈췄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전산마비 사태 이후 5,100억원을 들여 최고 수준의 보안시스템을 구축하겠다던 농협의 약속은 잇따른 전산사고로 허언이 된 지 오래다. 사고 발생 불과 한 달여 만인 지난해 5월 19일에도 전산장애가 발생해 인터넷뱅킹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서비스가 중단됐으며, 12월 2일에도 프로그램 오류로 이틀간 장애가 발생해 3만여 고객이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3일 또 다시 전산 장애가 발생하자 "이제 농협의 전산 마비는 사고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잇따른 전산마비 사태 대응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농협은 사고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 관계자는 "장애가 발생한 뒤 곧장 복구에 들어갔고 마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피해를 입은 고객 숫자는 파악이 안 됐다"고 말했다.
빈번한 장애발생 원인도 불투명한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전국에 4,000개가 넘는 단위농협, 하나로마트 등의 전산망까지 통합 운영하다 보니 장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협에서 사고가 잦다 보니 유달리 부각되는 것인데, 실제 다른 은행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전산망 크기보다는 농협 내부 기강해이가 더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한 은행 전산 관계자는 "전산망이 복잡할수록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농협이) 안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IT감독국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프로그램 수정은 항상 있는 일이고 실제 적용에 앞서 충분한 사전점검이 필요한데, 이번 농협 사고는 이런 조치가 미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날 사고에 대해 농협 측에 구두 주의 조치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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