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사실을 사전에 파악치 못하고 북한 발표를 듣고 서야 알 정도로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부실 하다는 질타의 소리가 높다. 결과 만을 놓고 보면 정보 실패에 틀림 없다. 때문에 질책 받아 마땅 하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비판 속에서도 정보 운영의 어쩔수 없는 한계에 대한 냉철한 이해도 또한 필요 하다. 정보는 원천적으로 상대방이 꼭꼭 숨기려는 기밀을 비밀리에 알아 내려는 '숨김'과 '훔침'의 치열한 게임 이다. 말하자면 방패와 창의 싸움 이다. 이 정보 게임에서는 '방패'가 항상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래서 '창'의 노력은 아무런 소득 없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 하다. 모든 정보기관의 꿈은 상대방이 숨기려는 기밀을 실시간에 즉각 파악 할수 있는 스파이를 상대방 최고위층에 심어 놓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보 기관이 바라는 이상 일 뿐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정원이 김정일 사망을 즉각 알아 내려면 사전에 김정일 최측근 비서 또는 그의 사망을 알 수 있는 위치의 최고위 당과 군 실세를 스파이로 포섭해 놓고 있어야 했다. 또한 동시에 그에게 이를 비밀리에 즉각 알릴수 있는 통신 수단도 제공해 뒀어야 했다. 이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북한은 다 알고 있듯이 컨테이너 박스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고립된 국가 운영 체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접근 그 자체가 불가능한, '거부된 지역'이다. 물리적 접근도 어렵지만 정보 협력을 얻어 낼수 있는 심리적 장벽도 턱 없이 높다. 툭 하면 가족 전체를 죽음의 정치범 수용소로 잡아 넣는 억압 체제 속에서 북한 주민의 의식은 늘 공포에 질려 있다. 국정원은 바로 이런 북한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대북 정보를 운영 해야 하는 처지다. 실로 엄청난 전대 미문의 정보적 도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북한을 상대로 정보 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이다. 이 3개국 만이 대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인원을 배치 하고 예산을 쓰는 조직을 갖추고 있다. 중국은 외교적 접근 만 으로도 북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인공 위성과 같은 별도의 수집 수단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이번 김정일 사망은 어떤 정보 기관도 북한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또한 역설적으로 국정원 대북 휴민트 정보 자산 강화가 시급함을 강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특별하지 않다. 정보 기관 운영의 상식을 충실하게 실천에 옮기면 된다. 트르만 대통령 밑에서 미CIA 4대 부장을 역임한 베델 스미스는 역대 부장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맥아더 장군 후임으로 유엔군 총사령관 으로 부임한 리지웨이 장군 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실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비밀 정보 활동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들이 해야 할 일임을 깨 달았다."그는 편지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 기관 운영의 기본을 지적했다. 베델이 지적한대로 국정원은 더 철저한 정보 프로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대북 정보 환경을 돌파할 수 있다. 국민들도 필요하면 질책해야 하지만 따뜻한 성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끓임 없이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대북 정보의 한계에 도전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는 국민들의 이해와 성원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 차장 ·울산대 초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