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테크 혹한기… 주식 대박·부동산 불패, 이제 '신기루'일 뿐
코스피지수 2,000 돌파와 중국펀드 열풍으로 들썩였던 2007년. 당시 국민은행이 펀드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목표수익률을 조사했는데, 거의 절반의 응답자가 20% 이상으로 답했다. 31%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17.9%나 됐다. 반면 10% 미만으로 대답한 응답자는 7.4%에 불과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목표'수익률이니까 약간 부풀려진 부분은 있겠지만, 어쨌든 투자하면 최소 두자릿수 수익은 내야 성이 차는 분위기였다.
사실 외환위기 이전만해도 은행예금금리는 10%가 넘었다. 어디든 돈을 맡기면 최소 월 1부(1%)의 이자는 나오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주식에 투자하면 '더블'은 나와야 하고, 부동산에 투자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2~3배는 남겨야 '투자 좀 했다'는 소릴 들었다.
이처럼 높은 수익이 가능했던 건 그 시절이 고성장-고물가 시기였던 탓이다. 실제로 경제가 7~8%씩 성장하고 물가가 5%이상 오르면 사실 두자릿수 투자수익률을 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젠 저성장시대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투자수익률도 낮아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개인들의 뇌리 속엔 10%, 20% 수익을 내던 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몸은 저성장의 집에 살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도 고성장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젠 '저성장-고령화'시대를 맞아, 개인들도 마인드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두자릿수 투자수익률은 환상을 깨고, 기대수익률을 확 낮춰야 한다는 것. 높은 기대수익률은 무모한 투자와 잘못된 포트폴리오로 이어져 치명적인 자산손실을 초래하고, 결국 무방비상태로 고령화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기대수익률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장경영 수석연구원은 "저성장 시대가 시작된 만큼 수익률 눈높이를 크게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9.4%에 달했던 1988∼1991년 서울 아파트매매가격 상승률이 20.7%에 달했지만, 성장률이 연평균 5.8%로 떨어진 1999∼2007년엔 집값 상승률도 11.9%로 하락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더 떨어졌음을 지적했다. 채권 수익률 역시 외환위기 전 7%대 고성장기에는 12%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3%대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재테크 전문가들은 장기 목표수익률을 5% 정도로 보고 있다. 이정걸 국민은행 재테크 팀장은 "앞으로 3~4%대의 저성장 체제가 도래한 만큼 정기예금 이자를 조금 웃도는 5%대 수익률을 유지하며 장기간 자산을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무리 높게 잡아도 7%를 넘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기대수익률을 현실에 맞게 하향조정하면, 재테크의 목표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목표는 '단기 고수익 실현'에서 '안정적인 노후준비'로 바꾸고, 이를 위해 노후자금 저축기간을 늘리거나 저축금액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30대가 생각하는 은퇴연령(63세)에 필요한 월 평균 최소생활비는 156만원. 장기 물가상승률(3%)을 적용하면 현재 35세인 사람이 63세가 됐을 때 월 평균 356만원이 필요하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 자금을 마련하려면 기대수익률이 6%일 경우 매월 160만원씩 약 24년간 저축해야 한다. 하지만 저성장으로 기대수익률이 4%로 떨어지면 저축 기간이 4년 늘어나야 하고 특히 은퇴준비기간이 부족한 40~50는 저축금액을 4분의1 정도 늘려야 원하는 필요한 은퇴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 관계자는 "하루 빨리 기대수익률을 현실화해서 필요자금을 산출해보고 저축을 늘여가는 게 최선의 노후대비책"이라고 말했다.
적정 포트폴리오는?
일단 피해야 할 건 이른바 '몰빵'투자. 과거처럼 주식이 좋다고 집 팔고 대출받아 주식에 다 털어 넣고, 부동산이 좋다고 하면 모은 돈 다 털어 집에 쏟아 붓는 '올인'포트폴리오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일단 예ㆍ적금과 펀드, 보험 등 금융상품을 적절히 분산하는 원칙을 준수하되 ▦20~30대는 적립식 펀드나 주가지수펀드(ETF) 등 위험자산의 비중을 좀 높게 가져가다가 ▦40~50대가 되면 그때까지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게 좋다.
여기에 금 상품과 업종 ETF 등에도 약 10%정도의 자산을 배분하는 게 좋다. 금은 재정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만큼 안전자산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업종 ETF의 경우 위험이 큰 주식 직접투자나 수수료가 비싼 펀드 투자와 달리 생명공학 등 미래전망이 밝은 분야에 낮은 수수료로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동산의 경우 앞으로 1, 2인가구 수요를 겨냥해 역세권 도시형생활주택 등에 투자하며 장기 임대수익을 노리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예전과 같은 '아파트 갈아타기'로 큰 수익을 올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정걸 팀장은 "무엇보다 각자 자신의 재무상황을 진단 받고 불안한 노후에 대비해 어떻게 살림을 꾸리고 투자해야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저성장 시대를 맞아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누구나 이러한 진단을 받아 볼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올 부동산 가격 1~2% 상승 뿐…
회사원 김모(56) 씨는 지난 2003년 5월 OO렉슬아파트(26평형)을 4억1,500만원에 분양받아 2005년 12월 6억7,000만원에 팔았다. 2년7개월 만에 2억5,500만원의 차익을 챙긴 것. 당시 김씨가 가진 현금은 1억 원이 전부였다. 나머지 1억5,000만원은 전세를 끼고 1억6,500만원은 대출을 받았다. 대출이자와 세금, 각종 부대비용, 기회비용까지 공제하더라도 최소 1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 연간 수익률로 치면 50% 에 육박했다.
우리나라에서 재테크란 곧 부동산 투자를 의미했다. 자산관리를 통해 재산을 증식하는 데에 부동산 투자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변동을 집계하기 시작한 1975년 이후 땅값이나 집값이 하락한 해는 1991~1995년 그리고 2004년뿐. 가장 최근의 부동산 폭등기였던 2001년부터 6년 동안 전국의 집값은 64.7%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강남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한 채당 평균 3억8,000만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부동산 불패'는 이제 옛 신화가 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시가총액 추이는 2000~2006년 평균 23.3% 올랐지만 2007~2011년엔 3.5% 상승에 그쳤다. 올해 예상상승률도 고작 1~2% 수준. 부동산 투자로는 은행금리 이상의 수익조차 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송흥익 대우증권 연구원은 "소득 대비 높은 부동산 가격, 30~54세 인구 감소, 세계 최저 출산율로 볼 때 부동산값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며 "이젠 투자전략도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이나 상가 임대수입 등을 통해 연 5~10% 정도 수익을 내는 쪽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전했다.
부동산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펀드 연금 보험 등 금융투자다. 대박은 나지 않아도 적정 수익이 보장되고, 무엇보다 환금성이 보장돼 급할 때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때문에 선진국에선 오래 전부터 가계자산이 금융자산 위주로 되어 있고 부동산자산은 보완적 수준에 머물렀지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신화'가 너무 강해 지금도 가계자산 대부분이 부동산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가계자산 가운데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이 7대3, 혹은 6대4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3대7 혹은 2대8 정도로 부동산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문가들은 저성장시대를 맞아 하루 빨리 부동산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금융자산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들도 국민소득이 1만5,000~ 2만 달러로 늘고 고령인구 비율이 12%로 증가하는 시점에 주식 연금 펀드 등의 금융자산을 늘리는 포트폴리오 조정이 본격화됐다.
우리나라 역시 베이비부머(55~63년생)들의 은퇴와 맞물려 변화조짐이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하나대투증권 김대열 웰스케어팀장은 "작년부터 월지급식 펀드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 단카이세대(47~49년생) 은퇴 이후와 유사한 흐름으로 장기적 추세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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