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프랭크 연구소장 마이클 토마셀로는 최근 저서 <우리는 왜 협력하는가> 에서 인간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는 것은 본능임을 강조한다. 어른이 옷장의 문을 여느라고 쩔쩔매는 것을 보여주면, 18개월된 아기 24명 중, 22명이 어른을 도와주려 한다는 실험도 소개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도와주려는 것은 배워야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타고난 심성이다. 인간은 남을 도와줄 때 강한 행복감과 쾌감을 느낀다. 에모리대의 제임스 릴링과 그레고리 번스 등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때 보상의 뇌가 활성화 됨을 밝혀냈다. 우리는>
경쟁만 강요한 결과가 낳은 비극
이처럼 인간은 타고난 협력가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주변의 중학생들은 서로 도와주기는커녕 죽음에 이르도록 집요하게 괴롭히고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일까? 우리의 교육은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기에 이런 일들이 전국의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뇌발달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에는 대뇌의 발달이 불균형적이다. 청소년기에는 행동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다른 뇌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고, 위험을 회피하는 영역인 편도체 역시 느리게 발달한다. 청소년들은 자기조절 능력이 부족하며 충동적 행동, 감각추구 및 위험추구 행동을 많이 한다. 즉 자기통제력이 약하고 감정조절과 행동조절이 잘 안되는 청소년 수십명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둔 곳이 중학교 교실이다.
게다가 무리한 선행학습과 경쟁 속에서 억압된 청소년들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게된다. 성취도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몇몇 우등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칭찬을 받을 일이 별로 없다. 긍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게임이다. 그런데 과다한 게임 사용은 역설적으로 공격성을 높인다. 옆의 친구에게 주먹질로 스트레스를 풀게된다. 폭력이 반복된다. 어느 사이 폭력은 일종의 습관이 된다.
학교 폭력이 통제되지 않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교사의 권위 추락이다. 부모와 사회가 교사를 선생님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도 선생님을 우습게 본다. 게다가 생활지도에 시시콜콜 간섭을 받는 지금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해도 별다른 제지 방도가 없다. 중학교 폭력 사건들을 살펴보면, 때리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맞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살한 많은 아이들이 죽을 마음을 먹으면서도 선생님께 제대로 신고 한 번 하지 않았다. 교사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경쟁만을 가르쳤지 정의감이 무엇이고 정의롭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가르치지 못했다.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을 '비겁자'로 몰아서, 그들이 설 땅이 없도록 할 수 있는 용감한 아이들을 키우지 못했다.
이제는 이기는 것만 가르치지 말고, 같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의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내 아이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주변의 친구,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지극히 부끄러운 일임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함께 사는 법 가르쳐야
정부가 학교 폭력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 한다. 대대적인 구호나 거창한 기관 만들기 보다는 구체적인 학교폭력 대처 시스템을 마련하기 바란다. 특히 폭력 후의 처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이 폭력의 폐해를 깨닫게 교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부득이 처벌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처벌이 강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폭력을 휘두르면 '반드시'그때마다 제지를 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부디 이 비극스러운 상황의 아픔을 딛고, 새해에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더욱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교육환경이 주어지기를 기원한다.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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