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國技) 태권도. 최근 들어 한류(韓流)의 원조중의 원조라고 재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감독 중에서 가장 빛을 보기 어려운 종목이 태권도다. 피겨와 수영에선 선수 못지 않게 감독도 화려한 조명을 받지만 태권도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듯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안방에서 찬밥신세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다.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란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세혁(57) 대표팀 감독은 "태권도는 양궁과 함께 우리 국민들의 기대치가 가장 높은 종목이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그나마 메달을 따면 본전치기요, 지면 망신이다"며 그간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하지만 김감독은 "국기를 주종목으로 삼은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선수도 마찬가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예상 밖의 금빛 발차기를 선물했던 차동민(26ㆍ한국가스공사)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차동민의 금메달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체력과 체격적으로 서양선수에 안된다'고 손사레를 쳤던 80kg 이상급에서 금맥을 깨냈기 때문에 더욱 값졌다.
차동민은 그러나 올 7월 런던에서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겨냥하고 있다. 차동민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 레슬링 심권호 이후 개인종목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지난달 30일 국가대표의 요람 태릉선수촌에서 차동민을 만나 런던올림픽에 대한 각오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하지만 그는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통과하기 위해 올림픽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메달획득보다 더 좁은 관문이 대표 선발전이다. 이는 국가대표로 뽑히면 곧 메달후보 반열에 오르는 것과 같다"며 "이상빈(한국 가스공사)과 인교돈(용인대)을 넘어서는 것이 우선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태권도 종주국에서 지금까지 올림픽 2연패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선발전이 치열했다라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태권도에서 한 선수가 거둔 최고성적은 황경선(고양시청)이 2004 아테네와 2008 베이징에서 동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차동민은 그러나 "올림픽 티켓을 따내면 금메달은 반쯤 손에 넣은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력한 결승 상대인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그리스)와 두 번 싸워 모두 이겼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선 5-4로, 지난해 7월 세계선발전 결승에선 5-1로 꺾었다.
이 체급에선 또 파스칼 장띠와 미카엘 보로(이상 프랑스)는 물론 2007, 2009년 세계선수권자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 등이 포진, 가장 치열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어 인기가 높다. 만약 차동민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면 한국으로선 2000년 시드니 이후 4연속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차동민의 키는 189cm. 2m가 넘는 서양선수에 비해 왜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그만큼 날렵하고 빠르다. 순식간에 몸을 돌려 차는 뒤차기에 걸리면 경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단신의 불리함을 역이용해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타 내려찍는 찍기도 '악명'이 높다.
안양 부림초등학교 4학년때 형을 따라 태권도장에 들어선지 16년째다. 차동민은 자신의 태권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으로 서울체고 박정우 코치를 꼽았다. 그는 "중학교(서울 동성)때까지 운동신경도 신통치 않은 평범한 선수 중에 한 명이었지만 박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으면서 실력이 확 늘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들어 런던올림픽 너머를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년~10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까 머리 속에 그리고 있습니다. 10대와 20대를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와 30대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강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가장 뼈아픈 패배로 2011년 12월 파리오픈 선수권 1회전에서 영국선수에게 당한 패배를 꼽은 그는 "혼자 지쳐 나가떨어졌다"며 "두 번 이상 그런 어이없는 패배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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