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 절실한 요구는 "경제를 살려달라"였다. 유권자들은 마치 윤리적 흠결쯤 사실이어도 상관 없다는 듯 BBK 의혹 등을 괘념치 않고 넘겼다. 이 대통령은 무난히 대권을 잡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다.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올해의 화두는 5년 전 '경제 살리자'에서 '복지 확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서울시장을 갈아치운 무상급식 논쟁 이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다. 올해 선거 결과를 가를 것은 '복지를 택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범위, 어떤 우선순위를 택하느냐'일 뿐이다. 5년 사이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그만큼 확연해졌다.
그러나, 복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불안과 양극화는 근원을 따져 보면 일자리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공식적으로는 6.8%(2011년 11월)지만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통계로는 그 4배에 달한다는 청년실업률, 임금노동자 3명 중 1명 꼴인 600만명의 비정규직 등은 우리 사회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수치다. 멀쩡히 대학 나오고도 놀고 있는 자녀를 부양하느라 50대 부모가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는 현실 말이다.
정부는 새해 벽두부터 고용확대정책을 내놓았지만 애초부터 한계가 뚜렷한 보조정책일 뿐이다. 실업수당을 늘린다고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고, 세계 최장 수준인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 해도 기존 임금노동자의 구매력도 함께 떨어진다. 궁극적으로 실업 문제의 해법은 기업활동을 자극하는 경제정책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은 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거꾸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책임을 짊어졌을까. 정부는 수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대기업들도 눈부신 실적으로 화답했지만 그것이 임금노동자의 소득, 주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매출로 전환되지 않는 시대가 된 탓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수출이 잘 되고 투자가 늘면 고용은 덩달아 늘어 국민 모두가 그 과실을 나누었다. 반면 최근 10년간 대기업의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된 데에는 자동화와 비정규직, 외주화 등으로 인건비를 절감한 것도 기여했다.
현 정권은 복지정책에서 실패했다기보다 경제정책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대기업을 키워 성장을 유도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안이함의 실패다. 뒤늦게나마 상생과 서민을 강조한 이 대통령은 뭔가 깨달은 듯도 했지만 마치 부자의 선심을 기대하듯 대기업에 동반성장을 구걸한 정도에 그쳤다.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린 이상, 수출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탈피해 중소기업, 서비스업, 내수와 창업을 진작시킬 수 있도록 과감히 정책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이다. 시간이 걸리고 저항이 있을 것이다. 복지논쟁에 가려 아예 간과된다면 더 큰 일이다. 분배냐 성장이냐 하는 쟁점은 폐기되어야 한다. 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은 제각각 중대한 전환기를 맞았을 뿐이다. 선거의 해를 맞아 유권자부터 알아야 할 일이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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