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의 준비물을 사러 한밤 중에 대형마트에 갔다. 회사 야근 당번이어서 밤 12시까지 일하고 나니 갈 수 있는 곳은 24시간 편의점과 일부 대형마트뿐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야근하고 대형마트를 찾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곳에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의 밤 12시 이후 영업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또 대형마트 등에 대해 지자체가 매월 1, 2일 의무 휴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의 취지는 '골목상권'이라 불리는 중소유통업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법안의 원안은 밤 10시 이후 영업 금지였지만 업계의 반발이 크자 상임위에서는 11시 이후, 본회의에서는 12시 이후로 변경돼 통과됐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밤 12시 이후 문을 닫는다고 해서 골목 상권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밤 늦게 문을 여는 동네 가게는 24시간 편의점이나 야식 배달하는 식당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우리나라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밤 늦은 시간에 장을 보러 갈 일이 종종 생긴다. 대부분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 동네 슈퍼마저 밤 8시면 문을 닫아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유럽과는 현실이 다르다.
물론 대형마트와 SSM의 등장 이후로 전통시장과 동네슈퍼가 몰락하면서 중소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애초 외국과 달리 대형마트가 도심에 마구 들어서도록 허용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이미 소비 패턴이 달라진 이상, 규제를 하더라도 소비자를 고려하고 지역경제나 중소 상인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세심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도심에는 대형 유통업체의 추가 출점이 어렵게 하고, 대형마트에서 지역 특산물을 의무적으로 팔게 한다든지 고용 시 지역 주민을 우대하도록 하는 식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명분만 번드르르하고 실효성이 없는, 더구나 소비자의 불편만 초래하는 규제는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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