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뭐나 되는 것처럼
앙드레 프레노
마치 죽음이 끝장을 낼 수나 있는 것처럼.마치 삶이 승리할 수나 있는 것처럼.
마치 긍지가 응수나 되는 것처럼.마치 사랑이 원군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실패가 무슨 시련이나 되는 것처럼.마치 행운이 무슨 허락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산사나무가 무슨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마치 신들이 우리를 사랑이나 했던 것처럼.
* * *
새해가 밝아도 누군가는 결국 병실에서 숨을 거두고 아무도 원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날 테지요. 간절히 바라는 사랑은 여전히 곁으로 오지 않고, 실패는 대체로 실패일 뿐 시련 끝에 당도한 성공의 한 과정으로 기록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원군이 이제 막 도착한 듯. 가로수 가지에 쌓였다가 머리로 쏟아지는 눈송이가 천사의 축복하는 손길이라도 되는 듯. 옆을 지나치는 행인의 기침 소리가 그 축복에 대한 동의와 열렬한 재청이라도 되는 듯 우리는 이 해를 살아가 볼 겁니다. 마치 모든 일이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새롭게 놀랍고 새롭게 괴롭고 새롭게 아프고.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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