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려 한 경제 주체들 가운데 유독 중소기업만 외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과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 5곳의 작년 말 기준 대출잔액 집계결과, 가계 대출액은 341조원으로 2010년 말 321조원보다 20조원(6.3%)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액은 64조원에서 78조원으로 14조원(22.7%) 급증했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 대출은 238조원에서 245조억원으로 7조원(3.1%) 느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가 대기업의 3배에 달하는데도 증가액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중소기업 대출로 잡히는 자영업자 대출이 지난해 103조원으로 작년 한 해 10조원이나 확대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대출은 외려 3조원 가량 감소한 셈이다.
이렇게 중소기업 대출만 축소된 건, 경기가 나빠지자 대출 부실화를 걱정한 은행들이 중소기업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의 문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문턱을 높이자 건설과 조선ㆍ해운 등에서 부실기업이 속출하면서 작년 10월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83%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말(1.7%)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여기에 경기 둔화로 현금이 부족해진 대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가 커진 것도 중소기업 자금 마련에 악재로 작용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은행들은 대출금 회수 위험이 큰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부실화 가능성이 작은 대기업이나 담보(주택)가 확실한 가계 대출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자본시장 활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자금 조달의 80% 이상을 은행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은행 대출이 막힐 경우 중소기업의 무더기 도산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둔화가 예상될 때 중소기업 대출부터 줄이는 게 개별 은행 입장에선 합리적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은행이 그렇게 행동할 경우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결국 은행의 자산건전성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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