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011년을 불과 10분 남겨놓고 ‘한국형 버핏세’(고소득층에 대한 최고세율 구간 신설)를 전격 통과시켰다. 앞서 구랍 27일 해당 상임위원회 의결로 현행 세율 체계를 유지키로 했던 방침이 불과 며칠 만에 여야 의원들의 합의 하에 뒤집어진 것이다. 버핏세 신설로 MB노믹스의 핵심인 감세 정책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고, 도입 신중론을 펴던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근혜노믹스’마저 타격을 입게 됐다. 하지만 서둘러 통과시킨 개편안에 대한 반발도 거세 올해 선거 정국에서 세제 개편 논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감세로 출발, 증세로 끝난 MB노믹스
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은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감세 기조를 놓고 벌인 정치권과의 대결에서 3전 3패를 기록한 끝에 결국 증세라는 정 반대의 현실을 마주했다.
1차전은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제출됐던 지난해 9월. 여당조차 민심 이반을 이유로 감세 철회를 요구하자, 버티기에 나섰던 정부도 결국 기존 소득ㆍ법인세 최소세율 인하 방침을 철회했다. 이어 12월 28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법인세 최고세율(22%) 적용구간의 상한선마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에서 200억원으로 낮추며 한 발 더 물러섰다. 급기야 마지막 날에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임위 의결 사항이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는 지) 미스터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야 의원들의 기습 수정법안 처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감세를 향해 떠났던 배가 선장은 그대로인데 항해 도중 증세로 뱃머리를 돌린 셈이다.
“소득세 개편보다는 자본이득세 우선 검토”, “세제 개편은 선거 과정에서 종합해 다루자”라는 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신중론을 폈던 박근혜 위원장의 정책 주도권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친박계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친이계와 쇄신파, 야당 의원들이 합세해 개편안을 기습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 등 여야 의원 51명은 구랍 30일 ‘소득세 과표구간에 2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38% 세율을 부과한다’는 소득세법 수정안을 전격 발의했다. 비록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3억원 초과’로 수정 통과되긴 했지만, 그간 ‘부자 감세’ 논란에 대한 여당 내부의 위기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향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쇄신파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무늬만 부자증세’ 논란 여전
합의안이 시간에 쫓겨 급조되다 보니, 비록 통과는 됐지만 부장증세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발도 거세다. 이용섭 의원은 “3억원 초과 소득자는 전체의 0.17%에 불과한 ‘무늬만 부자증세안’”이라며 “1% 증세라는 버핏세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친박계 측에선 “3억원 초과 안의 세수효과는 7,700억원에 그치는 반면, 오히려 경제성장을 떨어뜨려 세수를 더 줄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일각에선 세부담이 38%로 커진 개인사업자와 세율이 오히려 22%에서 20%(2억원 초과~200억원 미만)로 낮아진 법인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마저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신중 접근 쪽으로 흐르던 세제개편 논의의 둑 한 쪽이 터지면서 올해 선거 정국에서 자본이득세를 포함한 부자증세안 경쟁이 한층 격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