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더 필요한 것은 운전면허였다. 그렇다고 파리의 운전사가 되는 고단함을 선택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석유를 얻기 위해 강대국들이 벌이는 추악한 전쟁을 묵인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쓸 만한 이야기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세상을 떠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아내를 조수석에 태울 것이다. 그리하여 지도도 없이 떠돌다가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우고 작업실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총천연색의 꿈을 꾸는 아내의 이야기를 받아 적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까지의 계획은 12월22일 전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걸어둘 시공간을 얻는 게 문제였다. 대형포털 사이트의 한 귀퉁이에 세를 내어 블로그를 운영해 보았으나 방문객들이 너무 적어 최근 문을 닫고 말았다. 점점 나의 언어는 헐거워지고 비분절적이 되어 갔다. 더 늦기 전에 소설면허증이 간절했지만 10여 년째 신문사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12월26일부터 운전면허 학과교육부터 받을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12월23일 오후 직장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금 밤하늘에 도착한 별빛이 이미 수억 광년 전에 사라진 것처럼, 그것은 1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가 곧 지나쳐버릴 메시지인지도 몰랐다.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의식 없이 흰 백지 속으로 뛰어드는 게 이젠 무섭다.
나의 문학계보는 간단하다. 김제복, 박지현, 윤성택, 안시아, 이해존, 최치언, 천서봉, 김미심. 윤형철, 김영진, 김기석. 하지만 나의 연애계보는 훨씬 복잡하다. 아내 박순용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족을 거쳐 친구들과 회사동료들까지 아우르고 나면 "6단계 법칙"은 수정되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