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59)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0일 물러났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8월 취임했으니, 무려 4년4개월간 재직한 셈이다. MB정부의 최장수 장관이기도 하다.
그는 정부가 추진해 온 굵직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도맡아 처리해 ‘FTA 전도사’로 불린다. 특히 2006년 1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의지를 밝힌 직후 우리 측 수석대표를 맡아 한미 FTA 협상의 전 과정을 주도했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언쟁이나 벼랑 끝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고, 2007년 협상 때는 갈아입을 옷을 전하려고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마라톤협상에 임하기도 했다.
‘검투사’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김 본부장이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에게 “우리 전생은 검투사일 거다. (검투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지만, 당신과 나는 죽기 살기로 하면 안 된다. 너 살고 나 죽고, 나 살고 너 죽으면 일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진 뒤부터다.
하지만 주요 FTA 협정 체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우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시위 사태가 터지자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엔 “쉼표 하나 고칠 수 없다”던 태도를 바꿔 재협상에 나섰고, 결국 자동차 분야 등에서 대거 양보해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초 한미 FTA와 한·EU FTA 번역오류 문제도 큰 오점이다. 200여건의 오역이 무더기로 나오자 용퇴 의사를 밝혔으나, ‘비준안까지 마무리하라’는 청와대 요청에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김 본부장은 다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이번에 그의 뜻이 수용된 것이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전 본부장은 1974년 외무부(외시 8회)에 들어와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 국제경제국 심의관, 지역통상국장,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등을 지냈다. 현재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의장과 한국수입업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차기 주미 대사 물망에도 오르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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