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2011년을 악몽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2011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2012년 새해에는 자신들과 같이 억울하고 아픈 일들이 없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발명동아리 아이디어뱅크 소속 신입생 김현빈(19)씨는 폭우가 쏟아진 지난 7월 27일 춘천 산사태 때문에 목숨을 잃은 동아리 선배 동기 10명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흙더미에 깔려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친구 선배들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반년 동안 매일 동고동락 하던 친구들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당시 집중호우로 산사태로 쓸려 내려온 토사에 왼쪽다리 근육이 대부분 파열된 그는 세 차례 수술을 받고 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뒤엎고 재활에 성공했지만 29일 만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씨는 "도서 산간지역 아이들에게 과학 원리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숨진 친구들의 희생이 헛되이 여겨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춘천시의 무성의한 대책도 6개월째 유가족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고 당시 춘천시가 유가족대책위원회에 약속했던 사안 중 어느 하나 이행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조사위도 별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해체됐고 장례비 등 보상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반년 동안 계속되는 줄다리기에 유가족들은 지쳤다. "사고 충격으로 가족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희생자 김재연(당시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3년)씨의 아버지 김성규(55)씨는 "아픔을 잊기 위해 이사를 하고 유품도 치웠지만 소용 없고 아내는 아직도 자다 깨 우는 날이 다반사"라고 전했다.
춘천 산사태와 같은 날 발생한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18개월 된 영아 등 7명이 숨진 전원마을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29일 둘러본 전원마을의 침수 가옥은 외관상 수리가 마무리됐고 산사태 이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전원마을 입구에서 칼국수가게를 운영하던 주민 배상분(51ㆍ여)씨는 "산사태 당시 기르던 강아지가 울어서 깬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삶의 터전은 모두 사라졌다"며 "잠을 자던 비닐하우스도 완전히 망가졌는데 무허가라 보상조차 못 받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7월 4일 인천 강화군 해병 2사단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김모(19) 상병을 육탄 저지하며 추가 인명 피해를 막은 권혁(19) 이병의 연말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29일 서울 불광동 집에서 만난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밤에 잠을 못 이루고 관통상을 입은 허벅지는 감각이 없다고 호소했다. 31일 의가사제대를 하는 권 이병은 당시 4명이 사망한 사건을 막다 3곳에 총상을 입었다.
권 이병에겐 그나마 연말에 희망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국가에서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 3월 동국대 전산원 연기과에 복학해 10년 정도 연극을 한 뒤 서른 살이 되면 단역이라도 영화배우로 데뷔하겠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총 맞는 연기는 나보다 잘 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인내를 하다 보니 평소에 생각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됐다"며 "고통을 기회의 발판으로 삼아 꼭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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