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뽑기·화장실청소 등 대부분 물징계 그쳐
학교폭력의 상처는 피해자에만 남지 않는다. 가해학생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한 채 비행과 범죄의 길로 빠져들 소지가 크다. 사건이 커지기까지 처벌 한 번 없다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전학이나 풀뽑기로 미봉하는 학교의 처리 때문이다.
사소한 폭행부터 엄히 다뤄야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선 그 수위가 미미할 때 엄하게 다뤄야 한다.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은 '사소한 폭력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무관용원칙(Zero tolerance policies)으로 유명하다. 단 한 명의 물리적ㆍ언어적 폭력도 원천 차단해 폭력에 둔감해지는 일부터 막는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학교는 ▦놀리는 표정 ▦1명을 소외시키기 ▦무례한 몸짓 ▦소문내기를 모두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런 행동을 하면 교사는 즉시 부모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가정교육을 권고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은 일정기간 별도의 공간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타임아웃제도 있다.
박효정 한국교육개발원 학교컨설팅연구실장은 "사소한 폭력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응하는 벌을 주며 학부모가 협조할 때,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이 다 함께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 없이 사회복귀 어려워
교사들 사이에선 '폭탄 돌리기'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서로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 폭탄(문제학생)을 떠넘기는 상황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서울 마포구 한 고교의 상담교사는 "많은 교사들이 '함께 말썽 피우는 패거리로부터 문제학생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핑계로 전학을 권유하지만, 실은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난감하니까 이렇게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밀쳐지는 학생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기회를 잃고 비행청소년-범죄자로 크게 된다.
심리검사 및 학습치료 전문기관인 '임상심리연구소 학습과 사랑'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비정상적인 심리를 드러낸다.
피해학생은 복수와 관련된 백일몽에 몰두해 현실감이 떨어지고 불안 공포 자살충동 등에 시달리며, 가해학생도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우울 불안 욕구좌절 양심·공감능력 부족 등 문제를 내보인다.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클리닉센터 팀장은 "근본적인 심리장애를 해소하지 못한 채 학교라는 사회로부터 배제시킬 경우, 이 아이들은 회복과 재활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다"고 우려했다.
국가 차원의 장기후견인 필요
하지만 가해학생에 대한 치료와 교육은 소수에 머문다. 2008~2010년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은 가해학생이 전문기관의 심리치료 등을 받은 비율은 매년 10%, 15%, 18%에 불과하다.
자치위원회는 대부분 봉사처분을 내려 애초에 치료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김춘진(민주당) 의원이 교과부로부터 제출받은 '2008~2010년 학교폭력 심의건수 및 조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가해자 총 1만9,949명이 받은 처벌은 교내봉사(36.9%)와 사회봉사(17.8%)가 절반 이상이었다.
교내 상담교사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총 1만1,415개 교육기관에 전문 상담교사는 883명에 불과한데다, 학교폭력 발생시 이들의 개입 여부는 학교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박효정 실장은 "장기치료가 가능한 대안교실, 상담센터를 늘리고 지원제도를 강화해 근본적인 행동수정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존중하고 협동하고 평화를 가치 있게 여기도록 학생을 교육하지 않으면 다른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가해학생에 대한 장기간 치료에서 모범적인 사례다. 교육당국이 문제행동 징후가 심각한 학생에게 사회복지, 교육학 전문가를 붙여 집과 학교에서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치료를 돕는 '교육후견인제도'를 시행한다. 한번 학생을 맡으면 2년간 지속되며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한다. 품행장애, 학교부적응, 가출 등 문제가 심각한 학생은 상주형 대안치료교육시설에 입소시킨다.
임정훈 전국 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역시 "핀란드 등 학교폭력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대부분은 학업성취도만 최고 가치로 내세우지 않으며, 하다못해 수학을 가르칠 때도 남을 도우며 배우게 하는 '협동학습'모델을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내 아이 학교폭력 징후는…
경기 A중학교 교사는 반 친구를 상습적으로 괴롭힌 학생이 문제가 돼 어머니와 면담을 했으나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는 우리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며 오히려 항의를 받았다. 처음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하다 나중엔 "피해학생이 맞을 만하더라", "학교가 피해학생만 감싸고 돈다"며 난동을 피웠다.
학교폭력 사태 해결의 난관 중 하나는 가해학생의 학부모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피해자의 부모 못지 않게 당혹감을 느끼고 무조건적으로 자녀를 감싸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곤 한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녀에게 더 큰 폭력을 쓰는 경우도 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먼저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해자의 징후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로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일이 늘면 한번쯤 의심해야 한다. 조 회장은 "특히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할 경우 누구 집에서 잤는지, 친구 부모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에서 주는 용돈에 비해 씀씀이가 커졌거나, 고가의 물건을 갖고 다니는 경우, 친구가 빌려줬다고 변명하는 것 등도 모두 전형적인 징후다. 조 회장은 "요즘 아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물건을 빌려주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빌린 것인지 묻고 돌려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성적이 크게 오른 경우도 강압에 의한 부정행위가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학교폭력이 불거진 후라면 가해학생의 부모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해 ▦자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피해학생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 사건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에서 정한 처벌을 수용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해학생이 책임과 관용의 자세를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조 회장은 "부모가 냉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자녀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해 상습적인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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