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들어온 지 사흘째입니다. 산에 들어 오랜만에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는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저를 바쁘게 했던 이 연재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안부가 지리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습니다. 추위는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햇살은 눈부시고 멀리 올려다보는 하늘은 시리도록 푸릅니다. 함께하는 친구들과 지리산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두레밥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마을로 내려가 토종닭을 사가지고 와서 무쇠 가마솥에 넣고 삶고 있습니다. 불기운에 가마솥은 뚜껑 틈새로 마치 증기기관차 같은 김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마늘도 까서 함께 넣었습니다. 찹쌀은 조금 넉넉하게, 깨끗이 씻어 그 곁에 두었습니다. 도시에 머물렀다면 약속과 약속 사이에서 바쁘게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연말에 의례적인 약속들을 산 아래 다 내려놓고 오니 가볍고 맑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 후에 다 함께 할 과일로 뭘 준비할까 하다 '횡천 딸기'를 마련했습니다.
횡천 딸기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 하동의 겨울을 대표하는 맛입니다. 겨울딸기가 제철 과일은 아니지만 겨울에 먹는 딸기가 최고의 맛을 냅니다. 딸기 향에서 단내가 훅하며 밀려옵니다. 붉고 달콤한 한 겨울의 횡천 딸기 같은 이 시간을 당신께 전송하고 싶습니다. 겨울딸기처럼 한 해의 끝이 달콤하시길.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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