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론] 헌법재판소를 생각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론] 헌법재판소를 생각한다

입력
2011.12.28 13:21
0 0

한 때 TV 드라마에서 "너나 잘 하세요"라는 대사가 나와 지금까지 유행하는 것을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자신을 제법 괜찮은 존재라고 스스로 평가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법학관련 국제학술대회나 회의에 참석해 보면 우리 국민이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게 우리 나라를 칭찬해 조금 민망할 경우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룩한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헌법재판소가 일정한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다. 오늘 날에는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국민 다수에 의해 선출된 국회와 대통령이 권력의 담당자가 된다. 그런데 모든 민주국가에서 국회나 행정부의 권력행사를 감시ㆍ견제하는 헌법재판제도를 두고 있으니 언뜻 보면 의아할 따름이다. 인류는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나치즘, 파시즘과 같이 다수결에 의한 폭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대의제와 다수결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 권력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여 제정한 '헌법'에 따라 작동하여야 하고, 이를 판단하는 고유의 전문적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헌재 결정에서 같은 헌법 조항을 두고 왜 견해가 갈리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부부가 몇 십 년을 함께 살면서도 똑 같은 일에 서로 정반대의 해석을 내리면서 다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법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나 공정이라는 화두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기도 한 가치다. 그런데 정의나 공정은 다수결이나 여론만으로 추구될 수 없다. 결국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오늘의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진리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여러 의견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9인의 재판관을 정확히 3분하여 입법부, 사법부와 행정부에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재판관으로 헌재가 구성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각과 주장이 재판이라는 과정에서 논의되고 평가받기를 기대하면서 헌재가 설계되었다. 국회에서 헌재 설립 이래 여당과 야당이 각자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를 존중하여 온 전통은 이러한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논리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절차가 중요한 것이고, 그 결정의 타당성은 이러한 다양한 시각의 제시와 토론 과정에서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방적 주장과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사상이나 시각이 위험하다는 견해 때문에 헌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다시 국회 청문회 의사록을 들여다 본다. 6ㆍ25가 남침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자료를 보아 확신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은 정부발표를 신뢰한다는 전제아래 "확신할 수 없다기보다는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자기와 다른 사람이 이러한 정도의 시각과 주장을 헌법재판과정에서 펼쳐서도 안 된다고 한다면, 사회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참여는 어디에서 보장되는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결국 용인될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다.

이공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