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가 민주화 시위 참가 여성들에게 강제로 실시해 온 처녀성 검사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군이 모든 실권을 장악한 이집트에서 법원이 군부의 인권유린 책임을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27일 카이로 행정법원은 사미라 이브라힘(25) 등 민주화 시위 도중 체포돼 군 교도소에 수감됐던 여성들이 군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군은 여성 재소자에 대한 처녀성 검사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임무수행 중 법률을 지키고 시민들을 상대할 때 규정을 준수하는 것은 군이 지켜야 할 의무”라며 “처녀성 검사는 해당 여성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피해 여성에 따르면 이집트군은 3월 9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체포한 여성 18명을 군 교도소에 수감한 뒤 이들에게 전기고문 등 폭력을 행사하고 남자 군인들이 촬영하는 가운데 알몸수색을 했다. 군 관계자들은 이 중 이브라힘을 포함한 7명의 여성을 상대로 처녀성을 검사하겠다며 여성들의 몸에 손을 넣어 내진(來診)을 실시했다. 피해 여성들은 “군이 우리에게 성매매 혐의가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며 검사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자 군부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군부는 처녀성 검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성들이 교도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반박할 증거자료로 삼기 위해서 검사했다”고 변명했다. 또 재판 과정에서는 “여성들의 처녀성을 판별하라는 공식 명령을 내린 적이 없고, 현장에서 군의관 개인이 당시 상황을 판단해 실시한 검사”라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에 인권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운동가 호삼 바가트는 “군부 지도자들이 자신과 부하들을 위해 둘러쳤던 면죄의 벽이 처음으로 깨졌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갖는 판결”이라 평가했다. 피해 여성 중 유일하게 신원을 공개한 이브라힘은 현지 TV와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소송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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