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대응실패로 LG전자에 긴 한파가 몰아닥치기 시작했던 작년 겨울 휴대폰개발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MC) 사업본부에 특명이 떨어졌다. 지시를 내린 사람은 CEO로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구본준 부회장. '아이(I) 프로젝트'로 명명된 미션은 세계에서 가장 화질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스마트폰 초기시장은 놓친 만큼 차세대(4G) 서비스인 롱텀에볼루션(LTE)을 겨냥해 TV에 뒤지지 않는 풀HD급 화질의 휴대폰을 제작하라는 지시혔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어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내 LG전자 연구개발(R&D) 센터에서 만 난 김형종 MC사업본부 상무는 1년 전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김 상무는 23년간 LG전자에서 100여종의 각종 휴대폰을 내놓으면서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배테랑이었지만, 당시 지시는 능력 밖의 일로만 느껴졌다. 더구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10개월이었다.
"사양 자체가 회사 차원에선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제품이었어요. 경쟁사에서조차 풀HD 스마트폰은 없었습니다. 회사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부담감은 몇 배나 더 컸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당장, 4G망 자체가 제대로 구축이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품질 테스트부터 애를 먹었다. 직원들이 직접 제품을 들고 나가 발로 뛰며 4G신호를 잡아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어떤 직원은 임신한 아내가 양수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지방 각지를 돌아다니느라 4개월 만에 집에 들어간 사원도 있었어요."
김 상무를 포함해 아이프로젝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00여명이 투입됐다. 일본 수출용 제품을 위해 현지 품질 테스트에 나섰던 연구원들은 태풍과 원전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을 피해 다니느라 매일 같이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한가지 다행이었던 건 그 동안 많은 투자로 세계 최대의 LTE 특허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에 따르면 LG전자는 전 세계 LTE 특허 가운데 가장 많은 23%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걸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1년이 지나 이제 그 달콤한 열매를 조금씩 맛보게 됐다. 지난 달 초 '옵티머스 LTE'로 내놓은 제품은 출시 2달 만에 30만대를 돌파하며, LG전자 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이후 가장 빠른 판매속도. 또한 국내에 출시된 LTE폰들 가운데서도 단일 모델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
LG전자 휴대폰의 '조용한 부활'을 주도한 김 상무는 현재 차세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LG 휴대폰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라며 "다음에 출시될 제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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