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캐릭터 가면을 쓰고 딱 붙는 가죽옷을 입은 남자들이 한적한 밤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이들 중 일부는 몽둥이나 경찰봉을 들었고 일부는 최루액 스프레이 같은 장비를 갖추고 있다.
얼굴을 숨긴 걸 보면 은행이나 가게를 털러 나선 강도 같기도 하다. 아니면 플래시몹(불특정 군중이 특정 장소에서 정해진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것)을 하러 나온 만화영화 애호가? 그런데 행인들이 인사하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가 밤마다 만화 주인공 복장을 갖추고 도심을 순찰하는 솔트레이크시티 자율방범대 '블랙먼데이 소사이어티'를 소개했다. 2006년 자생적으로 결성된 이 조직에는 검은 V자가 그려진 가면을 쓴 '레드 볼티지', 검은 해골 가면을 쓴 '레니게이드', 주황색 불새 문양을 옷에 새긴 '플레임 윙' 등의 대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치안 사각지대를 돌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복장이 특이할 뿐 여느 자율방범대와 하는 일이 같다. 자위권을 위해 필수적인 장비를 빼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바로 휴대폰이다. 범죄 현장을 목격한 다음 911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가 이들이 하는 일이다.
되레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경찰 역시 "우리는 직접 훈련을 시킨 사람들만 보증할 수 있다"며 애써 블랙먼데이 소사이어티와 거리를 두려 한다.
이렇듯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총기 소유가 허용된 미국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데, 이들이 굳이 이 일에 나선 이유는 뭘까. '어사일럼'이라는 별명으로 활동 중인 마이크 게일리(31)는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마약거래 전과가 있는 게일리는 "여기엔 나처럼 과거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자아실현을 하거나 대리만족을 느끼려 순찰하는 이도 있다. 신문기자 클락 켄트가 뿔테 안경을 벗고 쫄쫄이를 입으면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 되듯, 낮 동안 생업에 종사하는 블랙먼데이 소사이어티 대원들도 캐릭터 마스크를 쓰는 순간 지역사회를 지키는 수호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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