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투신 자살한 대구 중학생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도 넘은 '신상 털기'가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관련자들, 정봉주 전 의원 판결 주심 대법관 등에 대한 신상 털기가 논란을 낳은 데 이어 최근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불거진 무차별 신상 털기 양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10대 초반 어린 나이의 중학생으로, 신상 털기에 따른 불안심리로 인한 2차 피해까지 우려된다. 또 가해 학생들의 부모와 가족은 물론, 엉뚱한 친구들까지 가해자로 몰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숨진 A(13)군의 유서 내용이 일부 알려진 지난 22일 오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가해 학생 2명이 다니는 학교와 반, 이름과 사진, 블로그 주소까지 공개됐다. 네티즌들은 이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원색적인 댓글을 올렸다.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이들의 부모의 신상도 털자는 격문과 함께 휴대전화 번호까지 나돌고 있다.
가해 학생 B(14)군의 인터넷 미니홈피는 23일 이후 방문자가 2만5,000명에 달했다. 방명록에는 '악마' '살인자' 같은 단어와 함께 부모를 욕하는 어휘들이 가득했다. 다른 가해 학생 C(14)군의 블로그도 27일까지 방문자가 10만명에 달했고, 덧글난은 '지옥에 가라' '투신자살하라' 등 저주의 글로 채워지고 있다.
일부 언론에 이들의 부모의 직업이 공개되면서 신상 털기는 부모들에게까지 옮아갔다. 한 네티즌은 "부모 직업, 직장과 사는 아파트 동호수까지 신상털이가 시급하다, 트위터에 한 번만 올렸다가 삭제하면 된다"는 글을 올렸다. "주범의 사진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들을 처단할 용기 있는 자 없는가"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가해 학생들의 신상이 급속히 퍼진 것은 포털사이트의 이슈청원방 등에 이들의 실명과 함께 다른 친구들의 이름이 담긴 A군의 유서 내용이 27일 현재까지도 그대로 방치돼 있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A군이 유서에서 고마운 친구라고 표현한 학생이 엉뚱하게 가해자로 몰리거나, 또 다른 가해자로 알려진 학생의 이름이 경찰 수사보다 앞서 온라인에 공개되는 일도 벌어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수성경찰서는 유서에 나오지 않는 제3의 학생이 폭행에 가담한 혐의를 잡고 조사 중이라고 지난 26일 밝혔는데, 인터넷에는 이 학생의 이름이 이미 24일 새벽부터 실명으로 등장했다.
이 같은 과도한 신상 털기로 가해 학생의 가족은 물론 A군과 이들이 다닌 학교와 학생들까지 곤경에 처해 있다. 한 가해자 가족은 "우리가 죄인"이라며 불안해 했다. 학생들도 학교가 매도되는 데 좌절하는 등 학교 전체가 사실상 패닉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들은 조사를 받는 도중에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등, 거짓말탐지기 조사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범죄피해자 상담 전문 케어팀을 피해자 가족은 물론 가해자 가족들에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관련자들이 공인이 아닌 순수한 사인인데다 미성년자인 중학생들인데 그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며 "신상 털기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주관적 잣대의 사적 정의를 주장하지만 오히려 사법적 정의를 해친다"고 말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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