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는 외상 거래다. 신용카드가 결제수단의 90%를 점하다 보니 월급이 통장에 찍히자마자 빠져나간다. 근로자들에게 월급날의 기쁨을 되찾아줘야 한다.”
서태종 금융위원회 서민금융정책관이 그간 공ㆍ사석에서 누누이 강조해 온 말이다. 월급을 받아 그 한도 내에서 쓰는 게 올바른 소비 습관이며, 이를 위해선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직불형카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쉽게 발급받아 쉽게 쓰는 신용카드 탓에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고, 과소비 조장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2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을 막아 가계 빚을 줄이고 건전한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금융위는 우선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신용카드 발급 연령을 현재 만 18세 이상에서 민법상 성년(만 20세)으로 높이고, 원칙적으로 가처분소득이 있어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부채 원리금 상환액보다 소득이 많아야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확한 소득 증명이 어려울 경우 국민연금 납입 여부 등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전업주부는 배우자의 소득을 본다. 발급 기준이 개인신용등급 1~6등급으로 제한되지만, 그 이하라도 소득ㆍ재산 등을 감안해 결제능력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면 예외가 인정된다.
이용한도의 경우 카드사가 회원이 신청한 범위 내에서 회원의 결제능력, 신용도, 이용실적 등을 종합 심사해 결정하되, 관련 심사기록은 보존해야 한다. 신용카드 남발을 줄이기 위해 1년간 사용하지 않은 휴면카드는 1개월 내 사용 정지되고, 다시 3개월 내 자동 해지된다. 서 국장은 “내년 1~3월을 ‘휴면카드 특별 정리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휴면카드의 정리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연체가 없는 회원은 인터넷으로도 해지할 수 있고, 카드사의 부당한 해지지연 행위에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직불형카드 활성화는 카드시장 구조 변화의 핵심이다. 금융위는 예금계좌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직불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하는 한편, 24시간 결제가능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가 결제할 때마다 직불 혹은 신용결제를 선택하는 등 다양한 유형의 직불ㆍ신용 겸용카드 발급도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현행 25%에서 내년 30%로 상향되는 직불형카드의 소득공제율을 추가 확대하는 한편, 소득공제 한도액(현 300만원)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직불형카드 이용실적을 개인신용등급 산정 때 가점요인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신용카드 발급이 제한된 이들로 하여금 계획적인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금융당국은 2009년 현재 9%에 불과한 직불형카드 이용 비중을 5년 내 5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카드업계와 이익단체의 갈등을 초래했던 가맹점수수료율 체계도 개선키로 했다. 업종에 따라 획일적으로 적용하던 관행을 없애고 개별 가맹점의 현실에 맞춰 수수료율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맹점이 카드사별 수수료율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계약 해지권도 부여해 카드사의 일방적인 수수료 책정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요율 조정은 카드업계 스스로 내년 1분기 중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줄이도록 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실제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해 온 소상공인들은 이날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카드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수수료율을 책정하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카드사들에 개선을 맡긴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맹점 업주들이 카드사와 대등한 협상을 통해 수수료율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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