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흥분했을 법한 일들이 많았다. 과학도가 아니어도 지구를 닮은 외계행성의 발견이나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의 흔적 포착 소식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우주와 관련한 연구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최근 선정, 발표한 2011년 과학계 10대 뉴스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줄곧 이목이 쏠렸다.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인 힉스와 중성미자(뉴트리노) 때문이다. CERN은 이달 13일 힉스가 존재할 확률이 95%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힉스는 우주가 17개 입자로 이뤄졌다고 보는 표준모형에서 유일하게 발견하지 못한 입자다. CERN은 빅뱅 이후 사라진 힉스를 찾기 위해 빛의 속도로 가속한 양성자를 충돌시켜 빅뱅(우주 대폭발) 뒤 1,000만 분의 1초 상황을 재현하는 실험을 2008년부터 해왔다. 내년쯤 최종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앞서 9월엔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뒤집는 발표가 나왔다. 질량을 가진 입자 중 가장 가벼운 중성미자가 CERN의 가속기에서 724㎞ 떨어진 이탈리아 검출기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 빛보다 0.00000006초 빨랐다는 것. 그러나 CERN이 사용한 위성위치시스템(GPS)의 시간측정이 잘못돼 생긴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태양계 안팎에서 지구와 닮은꼴 행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케플러 우주망원경으로 지구에서 600광년 떨어진 곳에서 '케플러 22-b'를 발견했다. 이 행성은 지구보다 2.4배 크고, 액체상태의 물이 있다. 온도도 22도로 생명체가 살기 적합하다. 김승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껏 발견한 수천 개 닮은꼴 행성(슈퍼 지구) 중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이라고 말했다.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닮은 화성 탐사 노력도 계속됐는데, 미국과 러시아의 희비가 엇갈렸다. NASA는 무인탐사선 큐리오시티 발사에 성공했다. 큐리오시티는 내년 8월쯤 화성 적도 부근에 착륙, 미생물 등 생명탐사에 나선다. 반면 러시아 연방우주청(RFSA)이 쏘아 올린 무인탐사선 포보스-그룬트는 로켓 분리 이후 자체 엔진이 켜지지 않아 내년 1월쯤 지상에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에선 교과서를 수정할 만한 발표가 나왔다. 중국 고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최초의 새'로 알려진 시조새가 조류보단 깃털 달린 공룡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굴한 깃털 공룡 화석과 시조새 화석을 비교했더니 두 화석 모두 눈앞에 큰 구멍이 나있고 손가락뼈가 긴 점 등 조류에선 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에서 나온 치아 화석은 4만1,000년~4만5,000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도착한 시기가 이제껏 알았던 것보다 5,000년 빨랐다는 얘기다.
가디언은 줄기세포치료제 개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소식도 10대 뉴스에 올렸다. 미국 바이오기업 제론사는 지난달 자금부족을 이유로 척수손상 배아줄기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지난해 10월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세계 처음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간 지 1년여 만이다. 망막질환 배아줄기세포치료제를 개발 중인 정형민 차병원줄기세포연구소장은 "미국 경제가 어려워 다른 회사들도 줄기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을 중단하고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임상 3상 시험까지 끝나는 2015년경,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밖에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 랄프 스테인먼 교수가 사흘 전 숨진 사실을 모른 채 선정사실을 발표해 1974년 이후 고인에게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깬 것,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낀 여성의 뇌 변화를 살핀 미국 럿거스대 연구, 21세기 최고의 신물질로 주목 받고 있는 '그래핀' 연구가 10대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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