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4월 시행될 준법지원인 제도의 대상기업을 자산 3,000억 원 이상 상장회사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의 상법 시행령(안)을 28일 대통령 업무보고와 함께 입법 예고할 예정이어서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등의 형식적 절차만 남았다.
우리는 시행령(안)의 근거인 개정 상법이 3월 국회를 통과할 때부터 이 제도의 타당성에 커다란 의문을 표시했다. 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로 내세운 기업의 윤리ㆍ투명 경영을 강화 해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최종적으로 개별 기업의 자율에 속하는 윤리 경영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어색할 뿐 아니라 그 실효성도 의심스럽다.
더욱이 개정 상법이'변호사나 경력 5년 이상의 법대 교수'로 준법지원인 자격을 한정한 데서 보듯, 겉으로 내세우는 취지와는 달리 기본 발상이 법조계 밥그릇 챙겨주기에서 비롯했음이 분명했다. 이에 따른 기업의 추가 부담을 우려해 재계가 반발한 것은 아주 당연하다. 상법 개정으로 제도 도입이 확정된 마당에는 그 대상이나마 최소화하자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포화상태에 접어든 법률시장의 숨통을 기업 부담으로 터주려는 발상은 시장 포화의 직접적 배경인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변호사 공급을 늘려 시장경쟁을 강화, 시장에서 소외된 서민층에도 법률서비스가 미치도록 하겠다던 다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 없다. 정부안대로 자산 3,000억 원 이상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할 경우 448개사가 해당한다. 이들 기업이 한 명씩만 준법지원인을 두어도 448명이 밥그릇을 챙기겠지만, 막 싹트는 법률시장의 경쟁 분위기에는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아울러 그에 따른 기업 부담은'준조세'로서 국민 전체가 혜택을 누려야 할 세금을 특수계층이 미리 떼어가는 셈이다. 대표적 반 서민, 반 중소기업 법제가 아닐 수 없다. 적용범위를 자산 1조원 이상 상장기업(12.3%)으로 높여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추는 시늉이라도 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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