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 12월 하순이 되면 거리와 상가가 온통 크리스마스 트리로 치장한다. 호치민 중심가는 거대한 축제 장소가 되고, 대형 빌딩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화려하고 요란하다. 섭씨 30도의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만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진을 찍고, 성탄미사에 참석하고, 밤늦도록 파티와 데이트를 즐긴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오랜 프랑스 식민지시절 뿌리내린 성당이 곳곳에 있고, 가톨릭 신자가 전체 국민의 10%인 600여 만 명이나 된다.
■ 호치민 젊은이들의 크리스마스 풍속도도 조금은 달라졌다. 거리축제를 즐기고는 극장으로 물려간다. 한국에서 진출한 멀티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호치민의 극장들은 옛날 서울 변두리의 퀴퀴한 재개봉관 수준이어서 젊은이들이 가기를 꺼렸다. 수준 높은 한국의 멀티플렉스가 베트남 사람들의 극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바꾼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베트남에서 '극장'하면 역시 한국이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아직은 호치민과 하노이 등 대도시에 겨우 10여 곳 운영하고 있지만 베트남 전체 70%를 차지하고 있으니.
■ 베트남 멀티플렉스의 시작은 2002년 한 국내 극장사업자(좋은친구들 김태형)가 호치민에 3개 스크린으로 문을 연 다이아몬드시네마였다. 그것에 자극 받아 베트남 자체 멀티플렉스가 하나 둘 생겼고, 3년 전 한국의 양대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와 CGV가 기존 사이트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2013년이면 한국 멀티플렉스가 지금의 3배인 30개로 늘어난다. 지역도 호치민 하노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양쪽 모두 단순히 인프라만 아닌 속을 채울 수 있는 한국영화 배급권까지 갖고 있어 유리하다.
■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멀티플렉스는 베트남 영화관객 규모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불과 5년 사이에 2배가 됐고, 매년 20~ 30%씩 증가해 올해는 1,000만 명이 됐다. 여전히 절대적 숫자는 적다. 1년에 상영되는 영화도 120편이다. 그 중 한국영화는 10여 편에 불과하다. 입장료 3,500원에 국내보다 낮은 좌석점유율(20~25%)로 수익성이 적지만 박성훈 롯데시네마 베트남 법인장의 말대로"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달랑 상품만 팔아서는 안 된다. 인프라도 함께 나가고, 노하우와 이익까지 기꺼이 그들과 나누어야만 한류도 커지고 오래 간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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