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이대호(29ㆍ오릭스)도 구박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01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2억1,000만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사실 투수였다. 194cmㆍ100kg의 좋은 신체조건에 각종 고교대회를 휩쓴 그는 롯데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였다. 하지만 생각만큼 공이 빠르지 않았다. 이대호는 선배들이 지켜보는 첫 훈련에서 공을 뿌렸지만, 직구 구속은 140km가 채 되지 않았다. 선배들은 이대호를 놀려댔다. "고작 그거밖에 못 던지냐. 내가 그 덩치라면 150km는 우습게 던지겠다." 자존심이 상한 이대호는 그때부터 공 대신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이대호가 사상 최고의 대우를 받고 일본 무대에 진출하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 이대호는 지난 6일 박찬호 이승엽 등이 몸 담았던 오릭스에 입단했다. 계약 조건은 2년간 계약금 2억엔, 연봉 2억5,000만엔, 인센티브 3,000만엔 등 총 7억6,000만엔(약 105억원)이다.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일본 무대에 진출한 선수는 모두 12명. 이 중 최고액을 받은 선수는 김태균이다. 김태균은 2009년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으면서 3년간 최대 7억엔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국민 타자' 이승엽도 2004년 지바 롯데와 계약하면서 2년간 5억엔을 받았다.
하지만 이대호가 둘 모두를 뛰어 넘었다. 올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오릭스는 오른손 거포 이대호를 위해 초고액을 베팅했다. 이대호의 연봉은 올시즌 기준으로 일본 용병 중 3위에 해당한다. 1위는 요미우리의 거포 알렉스 라미레스(4억5,000만엔), 2위는 야쿠르트의 임창용(3억6000만엔)이다.
이처럼 일본 무대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용병에게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오릭스는 6일 부산에서 열린 이대호의 입단 기자회견에도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과 무라야마 요시오 구단 본부장이 직접 참석해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체중을 10kg이나 줄이며 컨디션 조절에 힘쓰고 있는 이대호는 롯데에서 11년간 통산 타율 3할9리,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타율, 홈런, 타점왕을 차지하며 생애 첫 번째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타격 7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이대호는 최근 "2년 동안 일본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싶다. 최고의 타자와 함께 오릭스의 우승을 이끌겠다"며 "그동안 롯데의 4번 타자였지만 지금은 한국의 4번타자로 일본에 진출했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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