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또다시 벌어졌다. 옛 소련 붕괴 이후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시위인데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 등 정부 요직에 있었던 인사도 참가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향해 "정계에서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사하로프 대로에서 열린 집회에는 영하 5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 수만명이 모여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주최 측은 참가자를 12만명, 경찰은 2만9,000명으로 각각 추산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2,500여명이 시위했으며 바르나올, 크라스노다스,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전역에서 수백 명씩이 모여 집회를 했다.
러시아 정부는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최소한의 경찰력만 배치하고 헬기를 통해 상황을 감시했다. 테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집회장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고, 대테러 요원도 배치했다.
시위는 총선이 치러진 4일 이후 3주째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추로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사퇴와 재선거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 맞서다 9월 쫓겨난 쿠드린 전 재무장관과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재벌기업인 미하일 프로호로프 등 친정부 인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쿠드린 전 장관은 연단에 올라 시위대의 요구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야권의 분열을 노린 크렘린궁의 꼼수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정부 엘리트들이 이번 시위를 위기의 경고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푸틴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시위에 불을 당긴 인터넷 논객 알렉세이 나발니는 "정부가 계속 국민을 속인다면 우리 손으로 권리를 찾을 것"이라며 "다음 시위에는 100만 이상이 모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푸틴은 물러가라"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구호를 한 목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푸틴 총리를 직접 비난하는 것을 피해왔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 두 번과 총리 한 번 등 총 세 번의 임기면 충분하다"며 "푸틴 총리는 시위대의 요구에 귀 기울여 지금 당장 떠나라"고 말했다. 고프바초프 전 대통령은 푸틴 총리가 시위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두고 "수치스럽다"고 비난하면서 "푸틴이 나의 선례를 따라 대중의 불만에 고개 숙여야 지난 12년간 이룬 긍정적 성과들을 지켜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위는 10일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지만, 야권이 분열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 실질적인 정권 교체를 이끌만한 민주화 동력으로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3월 대선 때까지 정국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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