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은 조선시대 무덤이 많던 곳이다. 도성인 한양과 가까운 데다 산세가 아름다워 왕실과 명문대가들이 이 곳에 묘를 많이 썼다.
대규모 택지 개발을 앞두고 이 지역의 문화재 발굴 조사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10일 오전 11시경 화접리의 한 무덤에서 꺼낸 목관 내부를 살피던 복식 전문가가 탄성을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현장에 있던 조사원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번쩍번쩍 금빛 찬란한 직물. 시신의 무릎을 덮고 있던 구깃구깃한 천을 조심스레 펼치자 금실로 짠 사자무늬 흉배가 드러났다. 구름에 둘러싸인 사자가 비단 스란치마 중앙에 근사하게 앉은 모습의 이 유물은 ‘직금흉배사자무늬 스란치마’라고 이름지어졌다. 흉배는 본래 관복에 붙이는 것이고 사자무늬 흉배는 17세기 이후 유물들이 있지만, 여자 옷인 치마에 금실로 짠 사자 흉배는 국내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이 귀한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 남양주 별내면의 16~18세기 조선시대 회묘에서 나온 유물 중 복식을 중심으로 100건 306점을 전시 중이다. 2006~2010년 별내면 화접리ㆍ덕송리ㆍ광전리 일대를 조사한 한백문화재연구원이 기탁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구석기부터 근세 것까지 3,200여점에 이르는데, 아직 전체 발굴 보고서 작업이 끝나지 않아 그중 일부만 내놓았다.
이 지역에서 확인된 16~18세기 조선시대 무덤은 890여기, 그 중 206기가 석회로 만든 곽 안에 관을 넣은 회묘다. 회묘는 높은 지위와 부를 갖춘 집안이라야 쓸 수 있는 무덤 양식이다. 사자 흉배 스란치마의 주인은 미이라로 남아 있는데, 57세 여성으로 추정된다. 피장자의 신분을 알려주는 명정에서 확인된 ‘坡(파)’와 ‘淑(숙)’ 두 글자로 보아 정3품 고위 관리의 부인이고, 파평 윤씨 집안 사람으로 보인다. ‘淑’자는 정3품 당상관ㆍ당하관의 부인을 부르는 숙부인ㆍ숙인을 가리키고, 본관에 ‘坡’자를 쓰는 성으로 그 시대 금실로 짠 사자흉배 스란치마를 지닐 만큼 대단한 명문가는 파평 윤씨가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상설전시관의 한 구석 작은 공간을 표 나지 않게 차지하고 있지만, 전시물은 흥미롭다. 사자흉배 스란치마만큼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누구 무덤인지 알 수 없어 ‘6_2 지점 묘 4’라고만 이름을 붙인 남자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 관을 안치하는 구덩이 벽면에 작은 굴을 파고 옻칠한 나무 상자를 넣었는데, 상자 위에서 청동촛대, 상자 안에서 청동자물쇠, 쇠칼, 청동거울, 나침반, 붓 등이 나왔다. 청동촛대는 네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고 크기가 작은 휴대용이다. 이와 같은 조립형 촛대는 매우 드문 형태다. 여느 무덤에서 보기 힘든 청동자물쇠가 여러 점 나온 것도 수수께끼다.
조선시대 의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옷가지도 재미있다. 철릭, 단령, 포, 저고리, 치마 등은 대체로 낯익은 것이지만, 솜을 넣은 접은 단 치마나 겹으로 만든 거들 치마는 무덤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남자용 머리 쓰개인 이엄, 이불 대용 방한용품으로 여자들 장옷처럼 생긴 처네도 처음 출토됐다. 한겨울 웃풍에 코가 시린 방에서 이엄을 쓰고 머리 위까지 처네를 뒤집어 쓴 채 책을 읽는 선비를 상상할 수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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