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알려진 지 23일로 닷새째가 됐다. 그 사이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은 '블랙홀'처럼 국내 정치 이슈를 잡아먹었다. 내년 대선에서 안보가 핵심 이슈가 될 조짐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대선을 준비하는 주자들의 이해득실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경우 여러모로 손해를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북풍(北風)에 가려져 안 원장 이름이 신문지상에서 사라졌다. 한창 주가를 올릴 시점이라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여권 유력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손실을 봤다. 비대위원장에 취임하는 날에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날아들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놓쳤다. 쇄신 프로그램을 당차게 진행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북풍의 외형이 아닌 내용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북풍과 함께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유권자들이 대선 주자의 리더십을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안 원장이 비록 선한 이미지의 좋은 사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국가 운영이 안되겠다'는 생각을 지지자들조차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마케팅리서치 김미현 소장도 "이번 사안에서 가장 불리한 정치인은 외교·안보 분야와의 연관성이 약한 주자"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선 상대적으로 박 위원장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리서치앤리서치의 20일 여론조사에서 '북한의 급변 사태라는 위기상황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 박 위원장은 29.9%로 1위를 차지했고 안 원장은 13.2%로 2위에 머물렀다.
더구나 북한 정세의 불안정성이 한동안 지속될 것을 감안하면 추후 대선 레이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연초 발표되는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다른 주자들의 경우 북풍에 따른 지지율 변화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당에선 안보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온 정몽준 전 대표가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토론회'를 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야당에선 정동영 전 최고위원이 김 위원장과의 인연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성국 박사는 "돌발변수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김정은 체제가 안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북한 변수를 두고 누구에게 불리하고 유리하다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직은 이르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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