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있다.
내 주변만 그런가? 예전처럼 송년회로 들뜬 분위기도 없다. 더불어 새해를 맞는 특별한 각오나 기대 또한 줄어드는 것 같다. 며칠 전 매사 도전적이고 패기만만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무능하고 답답한 선배들을 보면 화가 나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없다. 모자른 선배라도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세월이 가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눈물도 많아진다. 이제 곧 방송국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여러 시상식이 있을텐데, 나는 수상자들이 소감을 말하면서 울면 그동안 얼마나 애썼을까, 감정이입이 되면서 내가 더 눈물을 쏟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일, 착한 일, 따뜻한 일에 더 눈물이 난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문자 주제를 주고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는다. 한번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많은 분들이 '상대방과 이혼하고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의견을 줘서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그 수만큼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그동안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사는 것이다. 지금은 밉기도 하고 이 사람 없으면 못살 것 같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감정도 흘러가는 것이다. 잘났건 못났건, 사이가 좋건, 나쁘건, 우리는 모두 결국 늙고 허무하게 이 곳에서 사라진다.
이런 애잔한 마음, 시간속에 녹아드는 슬픔과 그리움, 아픔을 담담하게 표현해서 오래도록 애창되는 노래가 있다.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다.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
힘없이 뒤돌아서는 그대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만 보네.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로가 원한다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은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1988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방송에 이 노래가 나가면 '가슴이 아려온다'는 문자가 많이 온다. '불후의 명곡'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곡이다.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소예'를 만든 고 최창권 선생의 아들인 최호섭은 가창력이 뛰어났는데 아쉽게도 '세월이 가면'이후 뚜렷한 히트곡은 없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가수다. 지금도 이 노래는 신청하는 분들이 많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요 순위에도 빠지지 않는다.
실연을 당했거나, 실직을 했거나, 좌절을 했을 때 이 노래를 가만히, 혹은 소리내어 부르면 이상하게도 지난 상처에 위로를 받게 된다. 그토록 힘들었던 일이 운명처럼 느껴지고,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는, 나도 잘못한 일이 많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이 노래가 갖고 있는 특별한 힘이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떠오른 노래,'세월이 가면'… 노래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은 언젠가 기억될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었으리라.
조휴정ㆍKBS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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