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조기(弔旗)만 내걸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나흘째인 22일 도라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북한은 표정이 없었다. 선전마을 기정동 중앙에 우뚝 선 첨탑에 한 칸 내려 단 인공기만 나부낄 뿐이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영결식 다음 날인 29일까지 애도기간을 갖는다.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달리 큰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가로워 보일 정도였다. 산등성이의 북한군 초소에서도 경비병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드물게 1, 2명의 경비병이 나왔다 들어가는 모습만 포착됐다.
연합사 관계자는 "평소처럼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고, 밤에는 불이 켜지기도 한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전과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은 손에 잡힐 듯 했다. 개성공단과 송악산, 기정동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북한의 회색 빛 공동주택과 김일성 동상도 관광용 망원경을 통해 훤히 보인다.
기정동 마을과 불과 1.8km 떨어진 곳에서는 평소처럼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남측의 최북단 대성동 마을이다. 두 마을의 경계를 말해주는 노란색의 다섯 글자 '군사분계선' 팻말은 한반도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사건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흔들림이 없었다.
서울에서 약 60km쯤 떨어져 있는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판문점. 판문점 내 남과 북의 경계초소간 거리는 25m이다. 남측 헌병과 북측 경비병이 마주하고 있었지만 역시 긴장감은 없었다. 다만 북한군의 표정이 더 어두울 뿐. 북한측 판문각 앞에서 홀로 경비를 서고 있는 북한군은 비상경계 시 쓰는 철모가 아닌 평상시처럼 장교용 군모를 쓰고 있었다. 근무복과 근무를 서는 형태는 평소와 다름없다는 게 연합사의 설명이다. 90여명의 내외신 취재진이 몰려가자 망원경을 이용해 이쪽을 관찰하는 듯했다.
한국군 경비대대 소속의 한 장교에 따르면 남측에서는 하루 평균 500~600명, 많은 날은 1,000명이 북측에서는 30~50명이 꾸준하게 판문점을 찾는다고 한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측 관람객은 줄어들었지만 이 와중에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연합사 관계자는 "우리 군은 김 위원장 사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한다거나 달라진 점이 없다. 평소처럼 이렇게 관람객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분계선에서의 이러한 조용함과 평소와 다름없음이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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