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꽃 핀 해, 두 별이 졌다영원한 3할·KS 혼자4승 불멸의 기록 남기고 일주일 사이 연이어 떠나
출범 3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는 올시즌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유난히 치열했던 순위 싸움과 윤석민(KIA), 오승환(삼성) 등의 라이벌 경쟁으로 680만9,965명(정규시즌)의 관중을 끌어 모았다. 여기에 삼성은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뒤 아시아시리즈까지 정복하며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비보도 있었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56년생) 전 삼성 2군 감독과 '무쇠팔' 최동원(58년생) 전 한화 2군 감독 등 큰 별이 진 것이다. 장효조는 지난 9월7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1주일 뒤 대장암과 싸우던 최동원이 5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이들은 프로야구 초창기를 이끌었던 영웅으로 프로 데뷔 연도가 1983년으로 같았다. 프로에 뛰어들기 전에는 나란히 아마 야구를 평정했으며, 각각 고향 팀인 삼성과 롯데의 유니폼을 입었다.
왼손 타자였던 장효조는 데뷔 첫 시즌부터 타율 3할6푼9리를 기록하며 단숨에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1983년에 이어 1985년(0.373)ㆍ1986년(0.329)ㆍ1987년(0.387)의 타격왕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1991년까지 8번이나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영원한 3할 타자'로 기억되고 있다. 장효조가 남긴 통산 타율 3할3푼1리는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전설'의 등장을 알렸다. 프로 입단 2년차인 1984년에는 27승 13패 6세이브로 정규시즌 MVP에 올랐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1패)을 따내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 4승은 프로야구 역사에서 전무한 일이었다.
야구 밖에 모르던 둘은 병상에서도 야구 얘기를 했다. 올해 삼성 2군을 맡은 장효조는 구단을 통해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 특히 (2군)선수들이 동요할 수 있으니 병명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삼성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고, 2군 선수들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불세출의 스타 최동원도 마찬가지다. 최동원은 마지막으로 눈 감기 직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야구공을 손에 꽉 쥐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오로지 야구밖에 몰랐던 최동원은 숨 쉴 기력도 없었지만 야구공만은 놓지 않았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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