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권력자들의 사망 정황은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죽음은 한 인간의 삶을 감쌌던 광휘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벌거벗은 채 애초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전제 권력자들의 마지막 순간은 바로 그 권력의 숙명 때문에 흔히 윤색되고, 이런저런 상상력까지 더해져 나중엔 뭐가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이 되기 십상이다. 전국시대를 제패한 일본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ㆍ1534~1582)의 아버지 노부히데의 죽음도 상상력으로 윤색된 정황이 정사(正史)의 기록을 압도하는 흥미로운 경우다.
■ 부히데는 42세에 유행병으로 급사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일본 역사소설 에선 열여덟 살짜리 소실과 동침하다 축시(丑時ㆍ새벽 2시)에 복상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노부나가와 그의 승계에 반대하는 가신들 간의 권력투쟁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사망 현장에 먼저 도착한 반대파들은 노부나가의 동생을 후계자로 지목한 거짓 유언장을 만든 뒤, 그걸 근거로 노부나가 축출을 획책하면서 발상(發喪)을 늦추려고 한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들이 주장하는 사망 정황의 허점을 예리한 기지로 공박하면서 즉각 발상을 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 소련의 철권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1978~1953)의 사망 정황도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공식 발표는 후에 그를 승계한 니키타 흐루시초프 등 정치국원 4명과 심야만찬을 하다 뇌일혈로 쓰러져 나흘 간 혼수상태 끝에 숨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역사학자 블라디미르 나우모프 등은 2003년 독살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스탈린 사후 공산당 정치국원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가 "내가 그를 해치우고 모든 사람을 구했다"고 자랑했다는 흐루시초프 회고록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 일설엔 침실에서 교살 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 북한 발표와 달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시점에 전용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가 논란이다. 사망 사실 자체도 까맣게 몰랐던 국정원이 뒤늦게 정세와 무관한 정황 정보를 흘려 각종 음모론을 부추기는 상황이 됐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것만 봐도 음모론은 공연할 뿐이다. 따라서 원 국정원장은 보고를 하더라도 최소한 '열차의 이동 여부가 김정일의 자연사에 의혹을 제기할 만한 변수는 아니다'는 점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그런 기본적인 테크닉조차 없었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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