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성들이 반 군부 시위에 대거 참여하면서 이집트 사태가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보수적인 이슬람권 사회에서 여성들이 대규모로 반기를 드는 것은 이례적이다.
BBC 방송 등은 20일 여성 시위대가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에 새 고민거리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닷새째 이어진 시위에서 최소 13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치는 등 유혈 진압으로 인한 사상자도 늘고 있다.
이날 민주화 성지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여성 수천명이 모여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군 최고위원회(SCAF) 사령관 등 군부를 “반역자” “배신자”라고 맹비난하며 군부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군인들이 상의가 벗겨진 여성 시위자를 끌고 가는 모습이 실린 신문과 사진 등을 내보이며 만행을 규탄했다. 여성들을 둘러싸며 보호하던 수십명의 남성 시위대는 “여성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고 외쳤다.
여성들이 타흐리르 광장으로 몰려든 것은 16일 카이로 도심에서 벌어진 사건이 발단이다. 군인들은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한 여성 시위자의 니캅(이슬람 전통 의상)을 벗기고 머리채를 잡아채며 질질 끌고 갔다. 상의가 벗겨져 속옷이 그대로 노출된 여성의 배를 군홧발로 폭행하기까지 했다. 다른 시위대와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 모습은 시위대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여성 시위자는 “폭행 당한 여성이 딸처럼 여겨진다”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있다는 군인들이 그런 짓을 하면서 시위대를 폭도라고 한다”고 몸을 떨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위대를 향한 군부의 폭력 행사가 매우 걱정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군부의 여성 탄압은 충격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수개월 전 이집트 국민이 민주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곳에서 여성들이 구타당하고 있다”며 “이집트 여성에 대한 탄압은 민주혁명을 모욕하고, 이집트 국민에게 불명예를 안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전문가인 스티븐 쿡은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호스니 무바라크의 독재를 끝낸 민주화 성지가 정쟁과 일상적인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며 “정치 지도자, 군부뿐 아니라 역사 문화 유적까지 불태우는 무분별한 시위대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이집트 군부는 유감을 표명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SCAF 위원인 아델 에마라 장군은 “여성 시위자 폭행은 우발적 사건”이라며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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