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장군님께서 서거하셨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역을 한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 아닙니까”
21일 오전 11시15분 북한 접경도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분향소가 차려진 주 선양(瀋陽) 북한영사관 단둥지부 건물 앞에서 40대의 북한 무역상은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밤 늦게까지 조문행렬이 이어진 분향소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단둥에 거주하는 북한인과 조교(북한계 조선동포), 중국인 무역상 등 조화를 든 400여명의 조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사업가로 보이는 북한인에게 “북중무역이 중단됐느냐”고 묻자, 그는 “무역도 중요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일을 할 때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북중무역이 김 위원장 사망 직후 전격 중단됐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전체 북중무역의 80%를 차지할 만큼 교역량이 많은 단둥해관(세관)에는 이날 아침부터 철강과 건자재 등 중간재 물자 등을 싣고 북한 신의주로 가는 북한행 트럭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특히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조문에 쓸 흰색과 노란색 국화 조화들을 대량으로 실은 차량들이 검역과 통행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관에서 만난 중국동포 무역상은 “어제까지만 해도 북측세관이 통행허가를 내주지 않아 북한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며 “오늘도 식료품 공산품 등 생활용품을 실은 차량은 통행 금지됐지만, 철판 등 건축자재들을 실은 차량은 통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사망 충격으로 무역은 물론 북한의 모든 일상이 올스톱 됐다가 점차 북한 내부도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북중경협의 상징물로 6월 착공식을 갖고 기반공사에 돌입한 황금평-단둥-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 건설현장은 김 위원장 사망과는 별개로 공사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단둥 신(新)구 랑터우(浪頭) 신압록강 대교 건설현장에는 50여명의 인부들과 10여대의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며 북중을 잇는 부교 설치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신압록강대교는 11월말까지 부교 건설을 끝마칠 예정이었으나 작업일정이 다소 지연되는 듯 보였다. 황금평 공단건설 현장 부근에도 도로 포장 등을 위해 흙더미를 나르는 트럭을 간혹 볼 수 있었다.
대북사업을 하는 단둥의 무역상들과 주민들에게는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중 경제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한 무역상은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위기에 직면한 북한내부 사정은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최악”이라며 “새 지도부가 안정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거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단둥의 대북소식통은 “북한 고위급 무역상과 정부관계자들을 만나 술 한 잔을 하면 이들은 무엇보다 중국식 개혁개방에 관심과 부러운 속내를 드러낸다”며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면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과의 협력관계가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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