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어느 고교도 선택할 수 있는 현행 고교선택제를 거주지 중심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서울 고교선택제 개선 계획(본보 12월 6일자 12면 보도)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졸속 추진돼 큰 혼란이 우려된다.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 직후부터 고교선택제 개편을 벼르며 2013학년도로 아예 시행 시점을 못박고 무리하게 밀어붙여 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시교육청은 20일 브리핑을 열고 "늦어도 내년 2월까지 고교선택제 개선안 2가지(통합학군안과 일반학군안)에 대한 배정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모의배정을 실시해 3월 확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따라 2013학년도에 시행할 입학전형의 기본계획은 내년 3월 31일까지 공고해야 한다.
하지만 2010학년도 고교선택제를 도입할 때 2006년부터 연구, 의견 수렴, 배정프로그램 개발, 3차례의 모의배정과 개선 등을 거친 것에 비하면 너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개선안은 지난해 12월부터 연구와 의견수렴을 통해 2가지로 압축된 것으로, 이제부터 3개월 내에 2개 배정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모의배정을 마무리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고교배정업무 담당경험이 있는 한 장학사는 "중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인 고교 배정 정책에서는 모의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교선택제 도입 때도 3년 전부터 총 3번의 모의배정을 거쳐 혼선여부를 점검했다"고 말했다. 당초 시교육청이 13일 고교선택제 개선 확정안을 발표하려다 이대영 부교육감이"(모의배정도 안 해 보고) 계획 먼저 발표한 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냐"며 결재를 보류하는 바람에 발표를 취소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특히 두 가지 개선안 중 유력한 통합학군안은 배정프로그램 개발부터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합학군안은 거주지의 학군과 인근 학군에서 2~5개교를 무순위로 지원하면, 성적 희망 통학거리 등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해 전산 배정하는 것. 시교육청은 이날 "원거리 통학생이 적게 나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학생성적을 고루 분포시킨다는 목표도 달성하려면 가중치를 어떻게 둘 것인지가 관건이다.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통합학군 도입, 성적 변수 고려는 큰 폭의 변화인데 이를 앞두고는 모의배정 1회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최소한 2회 이상 모의배정을 한 뒤 이 결과를 일반학교, 학부모에게 공표ㆍ분석해 실제 의도하는 정책효과가 나오는지, 학생 만족도는 어떤지 점검한 뒤 시행여부를 정해야 학교현장의 혼선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불안한 표정이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상임대표는 "고교다양화 정책, 절대평가 도입 등으로 어느 때보다 중학생과 학부모들이 고교배정에 민감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추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청 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고교배정 업무가 중등교육정책과에서 학교지원과로 넘어가면서 실무진이 모두 처음이라 이런 사단이 난 것 같다"며 "3년에 걸쳐 했던 일을 3개월에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고교배정 업무를 담당하는 이강태 시교육청 사무관도 "곽노현 교육감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안을 만들어 보자고 해 일정을 정했지만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으로선 2014학년도로 시행을 연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