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통일이 예상보다 빨리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이는 향후 김정은 체제의 내부 결속력이 공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맞는 통일이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 이른바 '통일 리스크'에 대한 우려 역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준비 안 된 통일은 '재앙'
남북 모두를 잿더미로 만들 극단적인 전면전 시나리오를 제외한다면,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불시에 찾아오는 독일식의 급격한 흡수통일이다. 소득 수준이 남한의 20분의 1에 불과한 북한이 하루 아침에 한국 경제에 편입될 경우, 통일은 '축복'보다 '재앙'에 가까울 수 있다. 최소 수백 만명으로 예상되는 북한 난민들이 일시에 유입되면 남한 전역에선 실업과 주택난, 치안문제 등 사회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저개발국 수준인 북한에 들어갈 막대한 통일비용 부담은 외국인 투자금의 탈출 러시를 촉발하고 주가와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해외자금 조달이 막혀 자칫 제2의 외환위기 사태에 몰릴 수도 있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수출 급감, 소비심리 위축과 더불어 사재기 현상까지 겹치면 실물경제도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막대한 통일비용 부담을 안은 정부마저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한국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서 순식간에 하류 중진국이나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갑작스런 통일 대비 서둘러야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우선 단기적으로 '김정일 사후' 과도기 북한정권의 안정을 돕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설령 중국의 힘을 빌어서라도 북한이 지금 상태로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천안함 격침 사태 등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총 책임자를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본다면, 현 정부와 여당으로선 이번 사태를 향후 김정은 체제와의 자연스런 관계회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익' 차원의 발상 전환을 주문했다.
통일비용을 선제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도 요구된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개성공단 같은 기존 남북경제협력 채널에 더해 기술 중심의 교류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북한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지닌 기초과학기술 분야와 우리의 실용화 기술을 접목해 의약품 생산이나 정보기술(IT)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새로운 생산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윤 선임연구위원은 "소규모라도 개성공단 형태의 경협구역을 평양, 나진, 선봉, 신의주 등에 다수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통일비용 절감 방안"이라고 말했다.
통일에 앞서 각종 제도 정비 필요성도 제기된다. 2,300만 북한 주민이 갑자기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에 들어올 경우, 극빈층 지원ㆍ국민연금ㆍ건강보험 등 기존 지원 잣대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통일 후 북한 주민까지 염두에 둔 복지시스템을 개발해 법제화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될 북한 극빈층에 대한 현금 지원보다는 직업능력 교육 같은 사회서비스 제공이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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