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이,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동일한데, 피를 나눈 혈육은 같은 질병을 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게 아니다. 하지만 미국 혹은 남한과 협상 또는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나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나 죽음이 알려진 것이나 한국 정부가 사망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 등을 보면 북한 지도자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들이,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과 흡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국교 단절한 일본의 애도 표시
부자의 죽음을 둘러싼 공통점을 꼽다 보니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조문을 둘러싼 갈등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한국 사회는 조문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열상을 노출했다. 지금 돌아봐도 어이없는 소동이었지만, 두 사람의 죽음이 비슷한 만큼 이번에도 조문을 둘러싸고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조문 혹은 조의 표시와 관련한 찬반 주장은 대부분 나와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조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폭격사건을 일으키고도 사과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애도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둘 다 틀리다 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남북의 모순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조문 혹은 조의 표시는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그럴수록 참고할 사항을 두루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일본이 조의를 표한 것을 먼저 생각해보자.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 19일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갑작스런 사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일본이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뜻밖이다. 맺어져 있던 국교까지 단절할 만큼 미워하는 나라의 지도자에게도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이 보여준 것이다.
또 한가지 참고할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낸 것이다. 자신들을 이해하고 같이 잘 지내보자고 강조한 지도자였기에 조문단을 보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명 한국의 대통령이었다. 북한이 한국 지도자의 죽음에 조문단을 보낸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02년 북한의 초청을 받아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한 사실도 상기해보자.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보수정치의 리더가 북한으로 가서 만나고 이야기한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시하는 것을 분별없는 행동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은 김정은 체제의 정착 여부다. 김정은 체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안착 가능성을 높이 보는 전문가가 많다. 식량 위기 등을 겪고도 동요가 없었던 북한이고 보면 체제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질기다. 그런 북한과 갈등하면서도 협력해야 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실용의 문제일 수도 있다.
경직된 태도 보이지 않아 다행
북한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 구멍이 생기거나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보수단체들이 조문과 조의에 반대하지만 국민 다수는 1994년처럼 경직된 눈으로 이 문제를 보지 않는다. 정부가 조문단은 보내지 않겠다 하면서도 북한 주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조문을 허용한 것도 국민이 과거보다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이 정부의 이념 성향과, 지금까지 보인 대북정책 등을 종합해볼 때 현실적으로 이 이상의 입장 표명은 힘들 것 같다. 이제 필요한 것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부의 몫이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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