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시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시민들은 숨죽인 채 TV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연평도 등 서해 5도와 경기ㆍ강원 북부 접경지역 주민들은 꽃게잡이 등 생업에 열중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 대피소를 점검하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평도와 백령도는 여느날처럼 평온했고 서해 5도와 인천을 오가는 3척의 여객선도 정상운항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가정집과 식당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뉴스 속보를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봤다.
특히 지난해 11월 북한의 포격 도발을 당한 연평도 주민들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최철영 연평도 면사무소 산업팀장은 "평소처럼 20여 척의 어선이 조업을 나갔지만 집에 있는 어민들은 뉴스를 보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 사망에 따라 혹시라도 지난해처럼 포격을 당하는 등 비상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 조모(45)씨는 "주민들은 동요 없이 일상생활에 전념하고 있다"며 "도발사태 등이 발생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전방지역 주민들도 불안감을 나타냈다. 민통선 이북 마을인 강원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김한태(61) 이장은 "주민들이 겉으로는 차분한 분위기지만 어수선한 틈을 타 북한이 기습도발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접경지대와 달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충격 속에서도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1시쯤 100여명의 시민들이 둘러서서 6대의 대형 TV를 응시하고 있던 서울역 1층 대합실. "잘 갔다"는 말이 간간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대부분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직원 최문기(34)씨는 "처음엔 충격이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만 모인 회사라 그런지 이내 심드렁한 분위기"라며 "하지만 가족과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겠다며 약속을 취소하는 등 불안해하는 동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년에 칠순이 된다는 황봉길씨는 "김정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냐"며 "속이 다 후련하다. 북한이 망하고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젊은 세대와 반응을 달리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달리 사재기 등 소동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역 인근 대형마트 관계자는 "직원들이 놀라긴 했지만 마트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 3세 하국대(34)씨는 "일본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쳤다"면서 "'서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데 멀리 있는 사람들이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했더니 머쓱해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단체인 라이트코리아는 "정부는 조문단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고 북한의 오판과 도발에 대비,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원수지간이라도 죽은 사람에게는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이 동양의 윤리적 전통"이라며 "정부가 일단 의전상으로라도 조의를 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또 북한을 자극하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박은성기자 esp7@hk.co.kr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허경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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