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35)이 SBS '뿌리깊은 나무'로 '추노'에 이어 다시 한번 사극 홈런을 쳤다. 현빈을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역을 놓친 아쉬움 따윈 훌훌 털어도 될 만큼 '뿌리깊은 나무'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청률은 연기자로서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쌓여가느냐에 차이를 주는 것일 뿐이죠."
쏟아지는 호평에 들떠 있을 법도 한데, 지난 15일 만난 장혁은 의외로 담담했다. 특유의 진지함에 더해 22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노력이 묻어났다.
'뿌리깊은 나무'는 이정명의 동명 소설(2006)을 각색한 것으로, 한글을 만들려는 세종과 이를 막으려는 비밀조직 '밀본'의 대립을 그린다. 장혁이 연기하는 강채윤은 세종과 부딪치며 시청자를 대신해 사건을 따라간다. "소설에선 화자인 채윤이 너무 이성적인 역할이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처음엔 거절했어요. 전 감성적인 걸 표현하는 캐릭터가 좋거든요. 각색돼 나온 대본을 보니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죠."
드라마에서 강채윤은 복수의 칼을 가는 암살자이면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장혁은 "배우로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좋다"면서 "촬영이 끝나면 피곤해도 스태프와 술 한잔 하며 얘기할 정도로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작품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세종과 밀본, 민초의 3파전이었으면 했는데 민초들의 비중이 너무 작아요. 논리적 전개가 두드러지다 보니 인물들이 감성적인 측면을 터트릴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아요."
감성적 연기를 선호한다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 진지하고 논리적이었다.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다독가(多讀家)다운 비유를 타고 이어졌다. 강채윤의 캐릭터를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과 연결시키는가 하면 채윤과 '추노'의 대길을 각각 똥개와 자칼에 비유했다. "액션이 강한 연기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리액션이 좋다"면서 "앞으로 타자만 보는 투수보다 게임 전체를 보는 포수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평소에도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한가 물었다. 그는 "인터뷰여서 그렇지 실제로는 농담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순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올 한 해 장혁은 드라마 '마이더스', 영화 '의뢰인' 등 세 편의 작품으로 대중과 만났다. 특히 체력 소모가 많은 드라마 두 작품을 하면서도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그는 호기심을 들었다. "캐릭터를 빨리 흡수하고 배출할 수 있는 건 쉴 새 없이 연기 활동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다 보니 익숙해진 거죠. 연기하는 게 매 순간 신나는 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해서입니다."
장혁은 떠들썩한 한류 스타도, 소녀 팬들이 울부짖는 청춘 스타도 아니지만, 믿음을 주는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그는 병역비리 사건을 겪으며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병역문제처럼) 스펙터클한 반전도 있었지만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람을 한 명 만나도 더 생각하게 되고…. 예전보다는 제가 보는 세상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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