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등본을 떼보니 '은현리 819'가 '서리길 119'란 도로명 주소로 변경되어 있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서리길 119. 내 주민등록등본에 찍혀있는 새 주소가 낯설게 느껴진다. 요즘 은현리에서 낯설게 느끼는 것이 새 주소뿐만이 아니다. 한적했던 시골길에 차량 통행이 잦아지더니 급기야 도로를 확장한다는 붉은 깃발이 꽂히기 시작했다.
점령군이 은현리를 접수한 것 같다. 풀꽃이 피던 길의 시간이 마감되고 아스팔트 왕복 2차선 시대가 열릴 것이다. 시골마을에 길이 넓혀지는 것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를 조금만 줄이면, 스스로 조금만 양보하면 아직도 충분한 길인데 은현리에 새 길이 만들어 진다.
그 길 따라 빠른 속도가 달려온다는 뜻이다. 은현리 소식을 궁금해 묻는 독자 분들이 있다. 그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면사무소나 군청에 들어가 확인해보지 않아 은현리가 어떻게 변할 지 아직 모른다. 다만 짐작할 뿐인데도 내 표정이 밝지 못하다.
10여 년 전 은현리에 들어와 찍어놓은 사진과 지금 풍경을 비교해도 너무 변해버렸다. 이러다 나의 은현리 시대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찰나의 거장'이라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란 사진가가 있다. 지금 은현리는 그의 사진처럼 시간과 변화의 찰나에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은현리를 바라보는 지금 내 표정이 그렇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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