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포스코는 세계적인 자동차 강판 회사가 될 것을 천명합니다."
포스코는 2002년 이른바 '홍콩선언'을 발표했다. 일반 범용강 생산에서 벗어나 고급강인 자동차 강판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이었다.
홍콩선언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포스코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철강 품질과 생산량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당시 100만톤에 불과하던 자동차 강판 생산량이 전 세계 단일 제철소로는 유일하게 연산 650만톤 규모로 성장했다. 홍콩선언대로 세계 최대 자동차 강판 회사가 된 것이다. 이는 세계 시장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포스코가 생산한 강판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난 40년간 이뤄낸 포스코의 성취는 가히 경이적이다. 지난 13일 타계한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지도 아래 무에서 유를 창조한 20세기 영일만의 신화는 우리나라 산업화 기적의 출발로 기록될 만하다. 초창기 함께 피와 땀을 흘린 '무명의 산업일꾼'들의 공로도 결코 가벼울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박 명예회장이 없었더라면 포스코도 없었을 것이고, '산업의 쌀'을 만들어낸 포스코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자동차 강국도 조선강국도 나아가 산업화와 고도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포스트 박태준' 시대에도 포스코는 기적을 이어갔다. 세계 최초의 파이넥스 신공법 상용화 등 포스코가 21세기 들어 이뤄낸 업적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세계적인 기업이 되어 달라"는 박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포스코가 넘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로 향해 가는 세계 철강산업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추격하는 중국업체들의 도전을 어떻게 뿌리쳐야 할지, 갈수록 첨단화되는 완제품(자동차 선박 가전등) 기술에 뒤쳐지지 않는 소재(철강)를 만들기 위해 품질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할지, 그야말로 포스코가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제를 풀기에 앞서 포스코는 먼저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가 있다. 바로 지배구조의 안정이다.
포스코는 전문경영인 체제다. 오너가 이끄는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체제 하에서 대기업으론 드물게 주인 없는 전문경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최정점에 있는 이사회는 전체 멤버(12명) 가운데 사외이사(7명)가 절반을 넘는다. 재벌체제와 정반대 지배구조를 가진 포스코 같은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독립적 지배구조이면서도, 실상은 적잖은 외풍에 시달려왔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박 명예회장 이후 대부분 CEO는 단명했고, 불명예 퇴진한 CEO도 한둘이 아니었으며, 누구든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항상 뒷말이 이어졌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가장 정치적으로 취약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결국은 사외이사들의 몫이다. 끊임없는 개입본능을 가진 정치권에게 '포스코를 그냥 내버려 둬라'고 자제요청을 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투명하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 정권이 바뀌어도 CEO가 흔들리지 않는 차단막을 만드는 것, 모두 사외이사들의 과제다. 박 명예회장의 유지를 이어가는 것도 지배구조 리스크를 없애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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