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첫 아이를 낳은 김연지(38ㆍ가명)씨는 출산 후 병실 문제로 애를 먹었다. 고령에 초산이라 온 가족이 1인실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병원에선 1인실이 다 찼다며 6인실 사용을 권했다. 어쩔 수 없이 6인실로 들어갔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출산 직후 하혈이 계속돼 치료를 받았어요. 다른 산모들의 남편 등 남자들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치료를 받으려니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옆 침대의 산모가 잠들어 있으면 가족들과 이야기하기도 눈치 보였고요."
적잖은 산모들이 비슷한 하소연을 한다. 다른 진료과 환자들이 6인실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과 달리, 편안한 환경을 바라는 산모들은 1인실을 놓고 경쟁하는 일이 잦다. 국내 법은 모든 진료과가 입원실을 만들 때 6명 이상의 다인실을 절반 이상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요가 적은 6인실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산부인과들도 울상이다.
1인실 위주 산부인과 봐줘라?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산부인과들이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병실을 1인실 위주로 만드는 곳도 있다. 분명 위법이다. 실제로 제주도의 S산부인과가 1인실 위주로 운영하다 적발돼 올 5월 보건복지부로부터 과징금 3억3,940만원을 부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기본입원료(2만6,000~3만3,000원)만 산정하는 6인실 이상 일반병상을 전체 병상의 50% 이상 설치해야 5인실 이하 상급병상에 대해 추가 이용료를 받을 수 있다. S산부인과는 상급병상만 만들어 놓고 6만~7만원씩 받았다.
S산부인과는 복지부장관을 상대로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병원 입장에선 산후 출혈 치료나 모유 수유 등 때문에 돈을 좀더 내더라도 1인실이나 소수 인원 병실을 선호하는 산모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는 지난 1일 "분만 위주 산부인과 병원이 처한 현실과 국가의 모성보호 의무, 출산율 저하 문제 등을 고려해 산모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행정부가 재량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S산부인과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법을 어긴 병원에 대해 보건당국이 내린 처벌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편안한 1인실 vs 저렴한 다인실
일반병상 설치를 의무화한 제도가 국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주장은 분만을 많이 하는 산부인과 개원가를 중심으로 2, 3년 전부터 나왔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해 전국 산부인과 개원병원의 산모 149명을 대상으로 병실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산모의 84.4%가 1인실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 학회는 올 6월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의 병상 가동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다. 조사 결과 1인실이나 2인실은 각각 평균 65.5%, 62.7%인데 비해 6인실은 12.2%, 7일실은 23.5%, 8인실은 1.4%에 불과했다.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출산 후 독립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있길 원하는 산모가 늘어 일반병상의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학회에서 올 4월 산부인과는 예외적으로 일반병상 확보 기준을 현 50%에서 20%로 낮춰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복지부에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병상 설치 기준을 낮추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산부인과들이 앞다퉈 1인실 위주의 고급화를 내세울 거란 전망이 많다. 저소득층 산모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실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산모들이 부담하는 출산 비용이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역시 1인실을 선호하는 다른 진료 영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임종 직전 환자가 많은 완화의료나 신생아가 많은 소아과 등 어디까지 예외 규정을 적용해야 할지도 사실 애매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판결 직후 "판결의 취지에 공감하고, 일반병상 확보 기준에 대해 산부인과의 특성을 감안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급병상만 운영한 해당 병원이 위법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항소하겠다는 게 복지부 입장이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산모들이 겪어야 할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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