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케스트라/헤르베르트 하프너 지음ㆍ홍은진 옮김/경당 발행ㆍ780쪽ㆍ3만9000원
오케스트라가 문화의 꽃이라면 지휘자는 그 꽃의 운명을 결정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최근의 변화상까지 담아 낸 책은 만나기 쉽지 않다. 역자 후기에서 밝히는 대로 이 책은 30개에 이르는 세계의 대표적 오케스트라들을 적어도 독일어권에서는 처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은 무엇보다 그 방대한 덩치의 내면으로 들어가 음악을 만든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미덕을 견지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관객은 서로 밀고 당기며 살아있는 음악을 구성해 간다. 지휘자 스토코프스키는 최고의 공연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 몰두해 지각하는 청중들에 대한 대처, 박수 금지 방안, 무대와 객석을 완전 암흑으로 만들어 지휘자의 손에만 조명을 비추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 등 재미있는 시도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휘자에 초점을 맞춰 오케스트라에 담긴 복잡한 의미를 실증적으로 예시, 서양 음악사를 통찰할 시각까지 제공하는 책이다. 2003년 마에스트로 푸르트뱅글러의 전기를 써 찬사를 받은 저자의 책답게 곳곳에 음악의 내면에 대한 올찬 정보로 넘쳐난다. 베를린 필, 빈 필, 런던과 미국의 '빅 파이브' 오케스트라, 독특한 개성의 러시아 앙상블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들이 보낸 시간은 곧 전쟁과 혁명, 경제적 난국과 동일한 것이었다며 음악에만 함몰되지 않는 균형감을 시종 유지하는 성숙한 관점도 이 책의 자랑이다.
현재보다는 약간 낮았던 모차르트 시대의 조율법, 최초로 지휘봉을 든 멘델스존의 개혁적 시도에 담긴 것 등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독자라면 별미로 다가올 역사적 지식이나 상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80쪽에 걸쳐 수록한 관련 음반 목록은 상임지휘자(음악 감독)와 객원지휘자 별로 정리돼 있는 데다 희귀 음반, 특정 해석이 돋보이는 음반 등으로 세분돼 있어 수집가들에게는 귀한 자료다. 1988년 출판돼 2008년에 2차 개정된 원서가 담지 못한 최근 정보는 옮긴이 홍은정씨가 각 장의 말미 부분에 추가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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