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생각, 이제 생각'은 스승의 수필 작품이다. 같은 이름의 수필집도 있다. 1984년 출판되었으니 내가 대학 졸업반 때의 일이다. 학생 신분으로 스승의 출판을 도왔다. 오탈자를 찾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스승의 원고엔 그런 흠조차 없었다. 당시 지천명에 가까웠던 스승은 제자들에겐 사랑을 다 퍼 주시고 스스로에겐 더없이 엄격하셨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앉아 있는 날이 많았지만 스승은 푸짐한 저녁을 사 주셨다. 스승은 가끔 소주 몇 잔에 눈을 지그시 감고 패티김의 '이별'을 자주 부르셨다.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을 때 스승을 모셔 식사를 하고 당시 유행하던 노래방에도 갔다. 그 무렵 스승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즐겨 부르셨다.
노래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며 서울 출장길에 최진희의 레코드판을 사 오시던 스승의 낭만을 기억한다. 기자로 일할 때다. 내 근무지를 다녀가시던 스승을 산마루까지 따라가 작별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스승은 나를 안아주며 말씀하셨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고. 무릇 스승은 그런 분이다. 남자의 눈물을 다 받아주는 고향 바다 같은 분이다. '옛 생각, 이제 생각'이란 이름으로 저마다의 추억으로 스승을 추모하는 제자들 모임이 오늘 있다. 스승의 책을 꺼내 읽는다. 신상철. 스승이 직접 쓴 서명은 아직도 선명하고 뜨거운데.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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