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에 걸린 한 50대 여성이 항암제에 내성이 생겼다. 오랫동안 항암 치료를 받다 보니 항암제를 여러 종류 계속 바꿔가며 써봐도 별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까지 왔다. 암이 복강 내 여러 군데로 퍼져 방사선 치료도 어려웠다. 많은 암 환자들이 이런 상황을 겪는다. 환자와 가족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기존 방법으로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암 환자들에게 최근 몇몇 의사들이 '온열 암치료' (oncothermia)를 써보고 있다. 아직은 생소한 방법이지만 일부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나면서 수술과 항암제, 방사선에 이은 제4의 암 치료법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고주파 전류로 암세포 태워
50대 난소암 여성은 온열 암치료와 항암 치료를 함께 받은 뒤 암 덩어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냥 항암 치료만 받을 땐 내성을 보이던 항암제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이대목동병원 여성암전문병원 부인종양센터 주웅 교수는 "온열암 치료를 병행하면서 암세포의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줄어들어 항암 치료에 반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열 암치료는 말 그대로 암세포를 뜨겁게 만들어 없애는 치료법이다. 암세포에 열을 가하는 수단은 고주파 전류다. 주파수 13.56MHz의 전류를 암이 생긴 인체 부위에 투과시키면 정상 조직은 그대로 지나쳐가고 암세포에만 에너지가 집적되면서 점점 뜨거워진다. 온도가 42~43도까지 오르면 암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한다.
열로 암을 치료하는 방식은 오래 전부터 시도해 왔다. 예를 들어 고열요법(hyperthermia)이라 불리는 치료법은 갑상선암이나 자궁근종, 간암 등에 지금도 종종 쓴다. 가는 바늘을 종양 한가운데로 찔러 넣은 다음 8MHz 정도의 고주파 전류를 발생시켜 세포를 직접 태워 죽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열을 어디까지 가해야 할 지가 모호하다. 좁은 영역에만 가하면 암세포가 남을 수 있고, 넓게 태우면 정상 조직에까지 해를 입힐 수 있다.
항암제도 마찬가지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분열하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항암제는 이렇게 세포 분열이 빨리 일어나는 곳을 찾아가 공격하도록 설계돼 있다. 때문에 머리카락처럼 원래 세포 분열이 활발한 곳은 암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항암제의 타깃이 된다.
이에 비해 온열 암치료는 바늘 없이 고주파 전류를 몸 밖에서 투과시키면 알아서 암세포에만 열이 집적된다. 주 교수는 "정상 조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별도의 영상 장비 없이도 지름 35cm 정도의 영역에 있는 암세포는 고주파 전류가 알아서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폐암 뇌암 췌장암 부인암에 암치료와 병행
이론적으로는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고형암에 온열 암치료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아직 항암제나 방사선 같은 표준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환자들이 이 치료에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효과가 좋은 환자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 환자도 있다.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도 아직 없다.
정확한 치료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한 것도 온열 암치료의 한계다. 고주파 전류의 열에너지가 어떻게 암세포만 골라내는지를 모른다는 얘기다. 학계에선 암세포와 정상세포가 내부나 주변 환경의 수소이온농도지수(pH), 이온 분포, 세포막의 성질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고주파 전류가 이를 감지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온열 암치료를 적용해볼 만한 환자를 신중하게 가려냈어도 의료진이 선뜻 권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비싸서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1회 치료가 30만원 정도다. 12회를 하면 1차 치료가 끝난다. 보통 3차까지 해본 뒤 계속 치료 여부를 결정하므로 치료 비용이 1,000만원을 넘는다. 온열 암치료는 현재 건강보험 인정 비급여 항목으로 지정돼 있다. 치료비를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 헝가리 등 유럽과 일본에선 온열 암치료가 활발한 편이다. 미국과 이탈리아, 중국도 온열 암치료 장비를 최근 개발했다. 국내에선 2년 전 창립된 대한온열암치료연구회 소속 의사 100여명을 중심으로 이대목동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고대구로병원, 고신대병원 등이 주로 폐암이나 뇌암, 췌장암, 부인암 등에 기존 항암치료와 병행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