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장삿속이었다. 기업은행 멀티채널부의 5년 차 임창민(29) 대리는 각종 모금을 통해 공익활동을 펼치는 기부단체들도 결국은 돈이 쌓이는 곳이니 통장 개설만 해도 일단 남는 장사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일종의 미끼가 필요했다. ‘기부금이 여러 곳에서 어지럽게 답지해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니 자금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주자.’
임 대리는 상대의 가려운 곳을 찾아냈다며 득의양양 기부단체를 찾았다. 웬걸 그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으니 “자금관리보다 우선 기부금이 많이 모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 앞에 임 대리는 올 상반기 내내 기부라는 화두를 놓고 고민하다 발칙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기부단체는 더 많은 기부를 바란다(홍보 및 기부금적립관리). 기부자는 깨끗한 집행을 원한다(투명보고서). 은행이 관련된 업무이니 사회적 책임(기부사이트 및 기부아이템 제공)을 강조하자.’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니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고 ‘내 배 채우려던’ 상술은 ‘더불어 행복한’ 기부사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멍석을 깔았으니 참여자를 불러모아야 했다. 이번엔 컨설팅 전문가 장혜숙(37) 과장이 나섰다. 장 과장은 다양한 기부단체의 동참을 호소하며 스무 곳 넘게 직접 발품을 팔았다. 연락한 곳은 50군데에 달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부의 참 맛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8월 1일 개발에 착수한 기부사이트는 12월 5일 문을 열었다. 11개 기부단체들이 참여했고, 열흘 만에 회원은 1,300명, 기부금은 8,387만9,873원이 모였다. “돈 안 되는 사업에 매달린다”는 주변의 타박에 시달리고, 경쟁 은행이 엇비슷한 사이트를 먼저 내놓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매진한 결과다. 김형찬 멀티채널부장의 전폭적 지원 덕이다.
기업은행 ‘참 좋은 기부 사이트’(give.ibk.co.kr)의 장점은 임 대리와 장 과장의 자랑처럼 쉽고 간편하다는 것이다. 마음만 있지 기부를 해본 적이 없더라도 회원가입(현재 5,000Wing)과 로그인(하루 100Wing)만으로 기부포인트 윙(Wing)이 쌓여 원하는 곳을 도울 수 있다. 1Wing은 1원으로 기업은행이 고객의 참여기여도에 따라 대신 내주는 기부금이라 보면 된다.
기부단체들의 사업 현황 등이 말끔히 정리돼 있어 기부자는 어떤 단체에 기부할지 선택하기 쉽고, 기부 내역은 언제든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Wing 적립방법 중엔 금융상품과 연계된 것도 있어 은행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다. 기부단체, 기부자, 은행이 상생하는 1석3조인 셈이다.
하지만 임 대리의 당초 목표였던 기부단체 자금관리 시스템 개발은 물 건너 갔다. 대신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던 기부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기부전도사로 변신했다. 장 과장 역시 “나누면 되돌아온다”고 강조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 해보면 이들의 주장이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자 역시 회원가입만으로 스리랑카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는 사업에 작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다. “참 좋고 참 쉽다.” 게다가 또 하고 싶어진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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