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합니다."(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
올 한 해 종교계를 돌아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한 조사결과 종교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이익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대기업보다 낮을 정도로 추락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선거 파동, 여의도순복음교회 내홍,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문제로 인한 정부ㆍ여당과 조계종간 갈등은 속(俗)이 성(聖)을 걱정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였다. 또한 개신교 정당 창당과 법륜 스님의 활발한 정치 행보는 '정교분리'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근심거리된 종교계
지난해 말 치러진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가 돈선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대표회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이광선 목사가 2월에 대표회장 선거 때 돈이 오갔다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금권선거 파동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한기총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의 직무가 정지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한기총의 위상과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이 여파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 일부 회원 단체가 한기총을 탈퇴했고,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크워크'등을 중심으로 해체운동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7월 한기총 특별총회에서 통과된 대표회장 순번제, 불법 선거운동 중징계 등 이른바 '개혁정관'의 핵심 내용을 대표회장에 복귀한 길 목사가 폐기하면서 교단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그 가족들이 교회 내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불거진 '집안 싸움'도 국민의 웃음거리가 됐다. 조 원로목사가 교회 핵심기구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과 굿피플인터내셔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해결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교회가 출연한 '영산 조용기 자선재단' 운영권을 놓고 조 원로목사 가족과 교회가 첨예하게 갈등하면서 내홍은 더 깊어졌다.
불교계도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문제로 정부ㆍ여당과 대립각을 세워 세상에 걱정을 끼쳤다. 조계종은 "정부ㆍ여당이 문화재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가지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며 정부ㆍ여당 인사의 사찰 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정부ㆍ여당이 전통문화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불교계를 달래는 유화책을 취하자, 6개월여 만에 정부와 슬그머니 화해했다.
열매 맺지 못한 화합 노력
몇 해전부터 우리 사회의 종교간 갈등이 두드러졌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포교방식이 주 원인이었다. 조계종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 본부장인 도법 스님은 8월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일명 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은 "우리 불교인은 이웃 종교를 진정으로 이웃으로 생각하는 데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해 신선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이 선언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무산위기에 처했다.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가 최근 최종 선언문을 발표하려다 종정 법전 스님의 유보 지시에 부딪쳤고, 일부 스님들이 선언문 내용을 문제 삼아 관계자들의 일괄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에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국내 7대 종단 대표가 9월 사상 첫 북한을 동시에 방문해 남북 화해와 단합을 위해 북한 종교인들과 교류를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화해의 노력도 없지 않았다.
종교의 정치 참여 논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종교의 정치 참여 문제가 논란거리가 됐다. 일부 보수 성향의 목사들이 8월 '기독자유민주당'을 창당하자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종교 정당 창당이 잇따라 종교간 갈등이 다시 불거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교회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해 물의를 빚고, 길자연 한기총 대표회장이 3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통성 기도를 인도하며 이명박 대통령 부부를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한 일, 조용기 목사가 2월 "이슬람채권법을 계속 추진하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발언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안철수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의 정치적 행보도 논란이다. 불교계에서는 사미계를 받지 않은 그를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보지만 밖에서는 불교 승려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중진 스님은 "승복 입은 사람이 정치의 달인처럼 비치는 것을 많은 스님이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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