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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첼로와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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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첼로와 노자

입력
2011.12.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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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엔 의자 하나, 피아노 한 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나온 첼리스트는 주황색 연주복을 입고 있었다. 무대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제 앞에 첼로를 놓았다. 피아노에도 연주자가 앉았다. 그 옆엔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 나는 첼리스트가 능소화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첼로를 감고 핀 한 송이 능소화. 현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선율이 울려 퍼졌다. 첫 연주곡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작품 34. 보칼리제는 가사가 없이 모음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다. 첼리스트의 첼로가 흥얼거린다. 고향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망명해 살던 라흐마니노프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첼리스트의 연주는 때로는 격정적인 표정으로 때로는 평화로운 표정을 하고 찾아왔다 돌아갔다. 순간 나는 보았다. 첼리스트가 들고 있는 것이 첼로가 아니라 물 항아리라는 것을. 물이 가득 찬 항아리를 첼리스트는 제 얼굴을 비추며 흔들고 있었다. 현은 물의 수평. 그건 또 노자(老子)의 경(經)이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첼리스트의 현이 기울어질 때마다 거친 소리가 났다. 현이 수평일 때 가장 평화로운 소리가 났다. 세찬 만트라 같은 흔들림 뒤의 고요와 수평. 나는 첼로를 통해 노자를 만났다. 행복했다. '브라바 장한나!'를 외치며 일어섰다. 14일 저녁 마산 3.15아트홀에서의 일이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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